제사의 기원과 역사
제사에 관한 가장 오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은대의 갑골문에 제물로 기록된 것은 짐승과 노예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이러한 제사는 물론 서양에도 있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카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가 그것이다. 카인은 농사를 지어 곡식을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목축을 하여 양을 제물로 드렸던 바, 하느님이 아벨이 올린 양만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심지어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에 따라 그의 외아들 이삭을 제단에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의 제사에는 보통 술, 과일(대추, 밤, 감, 배, 기타), 밥, 국, 국수, 떡(편), 과자, 적(육적, 어적, 계적), 탕(육탕, 어탕), 전(육전, 어전), 포(육포, 어포), 나물, 김치 등을 제수로 올리고 있다. 이 밖에도 옛날에는 현주라고 부르는 정화수, 젓갈, 식혜, 식초, 간 등을 올리기도 하였다. 또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햇과일들이나 떡국, 송편 같은 것을 올리기도 하며 이러한 제수를 통틀어 청작서수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형태의 제수는 산 사람을 대접할 때의 음식물과 유사한 것인데 이러한 예속은 대개 한, 당대 이후의 중국 서민사회의 조상제사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자의 가례에 수용되어 오늘날의 표준예법처럼 되었다. 보통의 음식을 쓰게 된 것은 돌아가신 이를 산사람과 똑같이 모신다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용의 "죽은 이를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하고, 없는 이를 섬기기를 있는 사람 섬기듯이 하라"라는 교훈이 그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정신으로 생전에 드리던 음식을 사후에 제사에도 올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사는 고래부터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의 제사 의식이 행하여 졌다. 삼국시대부터 자연신에 대한 제사가 자신의 조상에 대한 제사의례로 발전하였으며 일반 민중보다 왕가에서 먼저 행해졌다. 고려말에 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 졌으나 사실상 가묘가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주자가례"와 같은 유교의례가 사회전반에 쉽게 보급되지 않았다. 16세기 중엽부터 성리학이 심화되면서 양반 사대부 사회에서 "주자가례"가 정착하게 되고 주자가례에서 명시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행하여지고 있다.
②제사의 역사, 전통
제사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이 지내는 것으로 인류 문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제사는 동서고금의 어느 사회에서나 행해져 왔고 원시적인 미개 사회에서나 현대 문명 사회에서나 형태는 다를 뿐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문명 사회에서는 고급종교의 형태로, 미개 사회에서는 주술의 형태로 저마다 정성을 다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제사는 인류의 정신 작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중요한 하나의 잣대가 된다. 제사는 사람들의 인지가 상당히 진화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즉 그들의 의식 속에 귀신의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때부터 행해져 온 것으로 생각된다.
제사의 근원은 먼 옛날에 천재지변(天災地變), 질병(疾病), 맹수(猛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근세에 와서는 유고사상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표시로 변하게 되어 가장마다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사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공민왕 이년에 포은 정몽주 선생이 제정한 제례규정에는 대부 이상의 관원은 삼대 봉사(三代奉祀)로 하고 육품 이하의 신문을 가진 사람은 이대봉사이고, 칠품이하의 하급관원과 서민들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조선시대 경국대전 예전편에 기록된 제례의 봉사대상을 보면 사대부이상은 사대봉사, 육품 이상은 삼대봉사, 칠품이하는 이대봉사 일반서인(一般庶人)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칠품 이상의 관원은 불과 20% 미만으로 일반국민의 80% 상당의 인원이 칠품이하의 관원이나 서인이었기 때문에 전 국민 중 대부분이 부모제사만 지낸 셈이다. 그러하던 것이 한말 갑오경장(고종 21년)이후로 구시대의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반상의 구별없이 사대부의 예절을 따라 사대봉사를 해왔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1969년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었는데 기제는 조부모까지만 봉사한다고 하였는데, 1973년 가정의례준칙을 전면 개편하여 6월 1일부터 시행되다가 1999년 규제개혁철폐에 의하여 가정의례준칙은 폐지되고, 1999년에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새로 제정하였는데 제례는 기제 및 명절차례로 구분되고 봉사는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 되었다
③ 우리나라 제사의 시대별 변천사
우리나라 제사문화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기록은 별 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삼국시대에 들어서야 자신의 조상을 제사지내는 의례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가에서부터 먼저 시작된 삼국시대의 제사의례는 중국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고려 말에 이르러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주사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지며 조상에 대한 제사가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