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생애 작품 분석
1947
이리로 이사하고부터 이 행복한 시절은 끝이 남. 완고하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버지는 그해 익산 군청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뜨내기 행상처럼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실직이 잦아지자 가세는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짐.
1950
625 전쟁 중 동생 경묵과 외삼촌을 잃음. 윤흥길은 홍역을 앓던 동생을 돌보지 못하고 죽인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말함.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십대 전반의 그는 문제아임
1953
어렵게 장만한 집이 무허가 판자집이라는 이유로 강제 철거당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무작정 가출하여 서울, 대전 등지를 떠돌며 사서 고생을 한다. 이때 그가 집을 나와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며 체험한 것은 도시의 그늘 속에 존재하는 난폭하고 황량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런 그를 탈선하지 않도록 도운 사람들이 있다.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 집안에 기독교 신앙을 심어준 구원의 여인상 막내 이모,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주고 정신적인 감화를 준 교회 목사님. 그는 가출생활을 청산한다.
1958
이리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사범학교에 입학. 법률가를 꿈꾸었으나 학비가 적게 들고 취직도 보장된다는 부모의 권유를 못 이겨 선택함. 마음에도 없는 학교 생활은 순탄치 못해서 ‘범죄형’이라는 별명과 함께 ‘난폭하고 경조부박하여 치유 불능의 문제아’라는 종합평을 최종 학년 생활기록부에 남김.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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