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이제 주도에 남기고 간 흔적들 본토결전 계획 속의 제주도
1945년 3월, 이오지마 함락. 그리고, 3월 10일 도쿄 대공습을 비롯해 대도시에의 무차별 대규모 공습이 시작되었다. 본토결전에 대한 준비는 촌각을 다투는 과제가 되었다. 일본군은 일본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제주섬을 요새화 하여 1945년 8월까지 7만여 명의 일본군이 들어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2부 제주도 조선인 강제동원의 실태
제주도 내 노무동원자들이 1943년부터 해방직전까지 동원된 장소는 대규모 노동인력을 필료로 하는 알뜨르비행장과 정뜨르비행장, 진드르비행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노무동원이 시작된 시기는 1930년대부터라고 보여진다. 중일전쟁에 대비하여 중국 공격기지로 활요하기 위한 알뜨르비행장 1차 공사가 1931년에 계획되어 1933년부터 실제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937년의 중일전쟁 발발로 알뜨르비행장이 남경대폭격의 발진기지로 활용되었고, 1945년에 이르러 본토결전 작전의 중요 거점으로 제주도의 군사적인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집중적인 제주도민의 동원이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다. 강제동원의 실태를 알수 있는 노무동원의 특징에는 첫째, 제주도에서는 1930년 초반부터 노무동원이 이루어져 1930년대 중반 이후는 사람 수에 맞춰서 동원되는 형식이 취해졌으나, 1944년경부터는 각 면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동하는 특징을 보이다. 둘째,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직전까지 14살부터 5-60살 정도의 노인까지 노무동원되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열악한 노동환경과 현장감독들의 잦은 구타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주도민은 노무동원과 징병이외에도 식량조달, 무기제작과 정비, 비행장 건설 등을 위한 각종 공출에 시달렸으며, 초등학생들은 잔지공출, 부녀자들은 물공출에 동원되었다.
제3부 일본군의 패전과 제주도
1945년 7월 26일 독일에서 미국과 영국, 중국의 수뇌부가 모여 일본에 항복을 권고하고 일본의 처리 방침을 명시한 포츠담 선언은 일본 군대의 완전한 무장해제와 본국 귀환, 군국주의의 영구 제거를 요구했다. 이 포츠담 선언은 이후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일본군의 처리에 관한 기본지침이 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과 더불어 9월 2일 일본이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항복한 일본은 탄약과 폭발물을 파괴하거나 바다에 버렸다. 그리고 제주도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은 철수의 명령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결론
1944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제주도는 제주도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일의 틈바구니 속에서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일본군은 전황이 불리해지고, 미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제주도를 최후의 결전장 가운데 한 곳으로 삼고 현지에 살고 있는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 해 진지구축에 내몰았다. 이러한 아픔을 격고 난 여전히 현재 강정의 해군기지 개발 때문에 또 새로운 상처를 받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 과연 어떤 의미의 평화일까? 우리는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또 한번 반복하게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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