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京劇의 정의
京劇은 “中國 무대 공연의 최고 경지를 표현해내면서 고대 희랍의 희비극, 인도의 범극(梵劇)과 함께 세계 3대 고전극으로 불리우며” 中國 내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고 대표성을 띤 극의 종류이다. 또한 노래(唱),대사(念),동작(做),무술(打),춤(舞)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적인 공연 형태로서 예술적 표현 수단이 매우 풍부하다. “무대 배경과 도구 및 춤사위 등과 같은 공간의 조형, 노래와 대사 및 반주 등의 시간예술, 수염과 깃털 및 장삼(長衫)등의 복장과 화장 등으로 보조수단을 다양하게 이용하여 인물의 미묘한 심리 활동과 성격을 표현한다. 이처럼 대사, 음악, 미술, 퍼포먼스 등의 장점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中國 희곡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
특히 京劇에서 보여주는 독특하고 화려한 분장은 그 다양성에 있어서 동양 전통 극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일본의 대중 전통극인 가부키(歌舞 )의 구마도리( 取) 배우의 얼굴표정을 과장해서 분장할 때 청색, 홍색, 등의 선을 그려 넣는 그림이나 그 화장법와 이에 대응 할 수 있는 中國의 京劇 검보( 譜) 中國 전통극의 배우들의 안면 분장법으로서 극중 등장인물의 특징, 성격 따위를 일목요연하게 표시함는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를 사용하여 인물 조형 중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신분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표현방법 중의 하나이다. 만약 전통 극에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그 분장을 한번 보게 되면 어떠한 이미지나 현상이 금방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京劇의 譜에는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는데 그 색깔별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한 얼굴분장은 칠한 부위와 크기에 따라 성격의 정도를 말해주며 인물의 내면적 성격을 시각화하여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Ⅲ. 京劇의 역사
京劇의 기원은 BC 10세기 전후의 서주(西周) 때 신에게 제사 지내던 무격(巫覡)의 가무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배우의 출현은 BC 7세기경의 춘추시대(春秋時代)인 것으로 짐작된다. 초(楚)의 맹(孟), 진(秦)의 전() 등이 궁중의 풍유간언(諷喩諫言)에서 연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대(漢代:BC 202∼AD 220)에 이르러 서역(西域) 여러 나라와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2세기경에는 가무 ·골계희(滑稽戱) ·곡예 ·환술(幻術) ·역기(力技) 등이 민간에 널리 유행하였다. 이를 통틀어 ‘백희(百戱)’ 또는 ‘산악(散樂)’이라고 일컬었고, 여기에서 가(歌) ·무(舞) ·악(樂) ·우(優)의 결합을 찾아볼 수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인 악부(樂府)를 설치하고 민간의 가요를 채집하였으며,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해마다 정월이면 ‘백희’를 대대적으로 연희(演戱)케 하는 행사를 벌였다. 또한,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이원(梨園)을 설치하고 300명에 달하는 궁정 전속배우를 양성하였는데, 극단(劇壇)을 뜻하는 ‘이원’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당대(唐代:618∼907)에는 《대면(代面)》 《발두(撥頭)》 《답요랑(踏搖娘)》 등 가무와 음악이 결합된 형태의 가면극이 있었으며, 그 밖에도 ‘참군희(參軍戱)’라고 하여 참군 ·창골(蒼)이라는 두 배역이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간단한 골계극(滑稽劇)도 있었다. 이는 모두 ‘백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당시 이미 모든 예능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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