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제국시대의 중국과 유럽간의 최초의 직접 교류
경로: ▶ 초원길 : 외몽고의 카라코룸(和林)에서 서로 향하여 오고타이 한국의 서울 에 밀을 거쳐 바르하시 호, 카스피 해의 북방을 돌아 킵차크 한국의 사라이에 이르 는 이른바 초원의 교통로이다. 기원전 8세기경에 스키타이의 청동기 문화가 전파 되고, 그 이후 에는 흉노족의 활동이 두드러졌었다. 34세기 초에는 5호의 중국 침입과 훈족의 서 진등이 이 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56세기경에는 투르크 계의 기마 민족이 장악 하였다. 바투가 유럽을 원정했던 길도 이곳이다.
▶ 비단길 : 전한 무제 때 장건의 서역 파견으로 처음 개척되었으며, 그 후 바닷 길이 개척될 때까지 중요한 교역로로 이용되었다. 한편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 로 이란 방면에 새로운 문화권이 발달하면서 인도와의 교통도 열려 1세기 중엽 부터 두 문화 권 간의 교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중국의 비단과 나침반, 제지술 등이 서방에 전파 되었고, 헬레니즘 문화와 이란 문명, 불교와 이슬람 교 등이 모 두 이 길을 통하여 중 국에 유입되었으며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 장군의 활약과 동진 법현의 인도 왕래는 이 길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들이다. 이 길에 대한 중국 의 지배력이 가장 컸던 때는 현 종때이며, 남북조 시대부터 수당대까지 활발하 게 이용되었다. 이 비단길의 경영권 은 이슬람과의 싸움(탈라스 싸움, 751)에서 패한 후 상실되었다.
▶ 바닷길 : 항해술과 조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별로 이용되지 못하 였으 나 로마 제국의 홍해 지배와 로마 귀족들의 동양산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크게 번창하였다. 한편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바닷길은 8세 기 이후 이슬 람 제국의 발전으로 이란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국과 직접 무역 거래를 전개하게 되 고 특히 현종 말기 비단길의 경영에 실패한 이후 이 항로는 동서 교류에 매우 중요 한 역할을 했다. 8세기 후반 아바스 왕조가 바그다드를 수도로 정하면서부터 이슬람 인들의 해상 활동은 크게 활기를 띠게 되어 남부 중국의 항구까지 출입하였다. 송대 이후 중국 선박의 대형화, 나침반의 항해 이 용 등 항해술의 발달로 중국 상인들이 비단, 도자기를 가지고 자바, 수마트라에 서 인도에 걸쳐 폭넓게 문물 교류를 하였으 며 그 뒤 이 항로는 동서 교류의 혈맥이 되었다.
카르피니: 몽고에 파견이후 견문기 작성.‘키타이’ 혹은 ‘카세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짐. 이로 부터 중국은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키타이’ 라는 명칭은 916년부터 1124년까지 북중국을 지배했던 중국왕조명.
거란족에서 유래한 것. 이후로 ‘키타이’ , ‘카세이’ 는 전 중국을 대표하는 국명으 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옴.
뤼브뤼키: 카르피니의 뒤를 이어 몽고에 파견된 유럽인으로 몽고와의 상호 동맹관계를 체결 함으로써, 예루살렘을 해방시키자는 의도. 이미 밝혀진 몽고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전의 기록보다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키타이’ 와 ‘세라’ 가 동명국임을 밝힘.
마르코 폴로 : 르네상스기에 있어서 유럽의 중국에 관한 지식의 원천이 되는 “동방견문록” 을 작성. 오늘날에도 원사료로 이용. 몽고의 국가조직 , 재정 및 화폐제도 ,배 달의 업무시설의 우수성 등을 상술. 중국문화를 외부적 물질문명으로 관찰.중 국문화의 정신생활, 종교, 철학, 문학, 미술 둥에 언급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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