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怡山김광섭 작가의 생애
1911년 6세 때 북간도로 이주했으나 중국인의 행패가 심해 1년만에 귀향,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경성공립 보통 학교 3학년에 편입학, 1917년 12세에 졸업
1924년 서울 중동중학을 졸업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
1927년 22세 때 와세다 대학 조선인 동창회 「R지」에 ‘모기장’이란 민족주의적 습작시 씀
1927년 창간한 순문학동인지「해외문학」과 1931년 창간한「문예월간」의 동인으로 활동
1933년 28세 때는 귀국 후에 자신의 모교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동아, 조선일 보에 글을 쓰는 한편 극예술 연구회에 가담하여 서항석, 함대훈, 모윤숙, 노천명 등 과 친교
1938년 그의 출세작으로 제1시집 「동경」에 실린 ‘고독’
1941년 36세 때 일제 말 창씨개명을 반대하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독립의욕 을 고취시켰다는 이유로 구속된 후 3년 8개월의 옥살이를 마침
1946년 ‘조선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와 ‘프로 예술 연맹’들에 대결하고자 ‘조선 문화 협회’ 를 발족시키고 다시 그해 여건을 마련하여 ‘중앙 문화 협회’로 이름을 고쳐 창립하 는데 동참. 이후에 조선 문필가 협회 총무부장, 민주 일보사 사회부장, 전국 문화 단체 총 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부장, 미군정청 공보부장, 대통령 공보 비 서관, 대한 신문, 세계 일보, 「자유 문학」사장, 국제 팬클럽 한국 본부 중앙 위원 및 부위원장, 한국 자유문학자 협회 위원장, 한국문인협회발기 준비위원, 경희대교 수 역임.
시집 「마음」(‘49),「해바라기」(’57),「성북동 비둘기」(‘69),「반응」(’71)
1964년 「자유문학」지 운영난으로 고혈압 증세를 보였는데, 야구구경으로 하다가 졸도하나 의식을 회복하여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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