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악의 역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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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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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형은 신과 인간의 매개체로서 무녀가 사용한 신체(神體)에서 유래하였다. 무녀는 신이 붙는 매체로서 나뭇가지나 막대기에 간단한 눈과 코 등을 붙여 사람을 모습을 본 뜬 인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형식의 인형은 지금도 일본 동북 지방에 남아 있는데 ‘오시라 인형’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물론 신앙적인 도구이며 연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형이 오늘날의 일본 인형극의 원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종교 의례적 기능을 지니며 신에게 봉헌하는 인형극 가운데에서도 민간의 오락용 연희로서 애호되는 인형극은 그게 걸맞은 기술을 발전시켜나갔다. 역사적으로 헤이안 시대에는 인형을 놀리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예인 집단이 생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인형을 놀리는 사람을 ‘구구쓰’라 하였는데, 이들은 무로마치 시대에 접어들면서 직능 조직을 만들고 그 세력을 키워나갔고 ‘에비스가키’라고 불리었다. 그들은 스스로 노래를 부르며 에비스 인형을 놀리면서 집집마다 축복을 기원하는 걸립 예인이었다. 이 에비스가키 출신자인 히키다에 의하여 인형이 조루리와 결합하게 되었다. 처음엔 인형은 간단한 동작 밖에 할 수 없었고 발도 없었으며, 배경이나 무대장치 따위도 없었고 그저 막을 칠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후반이 되면서 용수철, 실, 수력 등을 이용해서 인형을 자동으로 움직이는 ‘가라쿠기 인형’(요지경 인형)이 등장하고 인형뿐만 아니라 무대 전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섬세한 장치가 고안되었다. 그리하여 인형극은 보다 정교하게 발달하여 현재의 분라쿠 삼인 조종 인형이 되었다.
2.조루리의 역사
(1) 기다유(義太夫)의 탄생
조루리의 역사는 헤이쿄쿠(平曲)로부터 살펴볼 수 있다. 헤이쿄쿠(平曲)란 가마쿠라 시대인 13세기 이후 비파법사가 연주하는 음곡으로 헤이케 이야기 다이라노키요모리(平盛)의 아래에서 영화와 권세를 다한 헤이케(平家) 일가가 헤이안(平安)시대 말기 1185년에 단노우라(壇の浦)에서 겐지(源氏)에 질 때까지의 약 20년간의 흥망성쇠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헤이케 이야기는 헤이케 일가의 멸망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한 전투의 모습, 우아한 귀족 문화의 자취, 사람들의 강함, 약함, 은혜와 사랑, 헛된 집념 등, 당시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전권을 통해서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헤이케모노가타리는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를 그 주제로 삼은 이야기 거리(語物 がたりもの) 입으로 이야기하며 들려주는 구송 문예. 말에 곡조를 붙여 악게에 맞추어 낭창하는 것.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서사성이 많다. 반주 악기로는 비파, 샤미센, 사사라 등이 있음.
를 말한다. 조루리는 원래 이 헤이쿄쿠의 유파에 속해 있었다.. 헤이케 모노가타리를 노래하는 헤이쿄쿠는 처음에는 천민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점차 헤이쿄쿠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일반 서민도 이를 즐기게 되고, 그 결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어 무사 계급이나 귀족도 헤이쿄쿠를 초대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원래 서민예능이던 헤이쿄쿠가 이처럼 귀족계급에 받아들여지게 되자, 예능 자체의 성격도 점차 변화했다. 그리하여 가마쿠라 말기에서 남북조시대를 거쳐 무로마치(室町) 초기에 이르는 동안에는 예술적으로도 세련미를 더해 한층 우아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류계급의 지지를 받아 발전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반서민의 생활 감정과는 동떨어진 길을 걷게 되고, 그 결과 서민들은 다시 자신의 기호에 맞는 음악이나 가요를 원하게 되고, 이에 부응해 생겨난 것이 조루리이다.
무로마치 중기는 노가쿠(能樂)가 이미 완성되어 수십 개의 노가쿠 극단이 신사나 사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다. 뿐만 아니라 헤이쿄쿠도 상류사회로 진출한 후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능들은 이미 어느 정도 고전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특히 헤이쿄쿠는 발생기인 가마쿠라 초기 이래 250년이나 경과했기 때문에 신선미를 잃은 상태였다. 일반 서민들은 헤이쿄쿠 대신 좀 더 평범하고 생활과 밀착된 음악이나 가요를 원했고, 그 결과 조루리가 호응을 받았다. 조루리는 교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융성하여 에도에까지 전해져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17세기 후반에는 여러 유파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 유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긴피라 조루리 조루리의 일파로 긴피라라는 용맹무쌍한 초인간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조루리. 용무살벌을 즐기던 당시의 에도 사람들 사이에 크게 유행함.
를 만든 이노우에 하리마노조가 있었다. 그의 수제자 기요미즈 리헤에는 낮잠을 자던 어느 여름날 뒷밭에서 들려오는 조루리 소리에 끌려 그 소리의 주인공인 고로베를 자신의 문하에 입문시켰다. 이 후 교토의 두 명창 하리마노조와 가가조노의 예풍을 익히는 것은 물론 여러 유파의 장점을 섭취하며 실력을 키워나간 고로베는 이름을 다케모토 기다유로 개명하고, 다케모토 좌를 설립했다.
이후부터 조루리라 하면 기다유 가락을 뜻하게 된다. 다케모토 기다유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던 여러 유파의 장점을 섭취해 화법을 여러 가지로 개량해 가면서 악극적인 표현이 풍부한 새로운 창법으로 불렀는데 이를 기다유 부시라 한다. 이 기다유 가락이 신음악예로서 세간의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그 내용에 있다. 기다유의 이야기는 서민의 생활 감정에 맞는 통속적이고 흔한 것이면서도 세상의 의리와 인정을 기조로 당대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생기 넘치는 인간성 표현을 중시한 것이 서민의 기호와 맞았던 것이다. 이 후, 조루리는 새로운 악기인 샤미센을 반주 악기로 삼게 된 후, 참 된 신 민중 속곡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考:기다유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