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기간은 성장ㆍ교육기(1930~50)이고, 둘째는 분단 체험과 문학 습작기(1951~59)이다. 그리고 셋째 시기는 문단 활동기(1959~69)이다.
1. 첫째 기간, 성장ㆍ교육기(1930~50)
신동엽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신연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식민지ㆍ반봉건의 모순구조에서 가난을 체험하며 자라나는데, 그 가난을 서로 도움으로 극복해 보려는 이웃들의 모습이 그의 시의 원형을 마련한다. 42년 부여국민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비가 제공되는 전주사범에 진학한다. 그리고 해방과 미군정을 거치는 동안 좌ㆍ우익 사이에 고민하면서 엄청난 독서를 한다. 이때 엘리어트 T.S 엘리어트. 영국시인 ‘황무지’(1922)의 작가.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문명의 황폐성
와 뚜르게네프 뚜르게네프(1818 러시아 오룔~1883 파리 근처 부지발). 러시아의 시인ㆍ소설가ㆍ극작가. 자유주의
와 무정부주의 도서를 주로 탐독했다고 한다. 이중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게된다. 신동엽의 ‘원수성’으로 가는 ‘귀수적’과정의 개념은 크로토프킨의 자연적이고 진화론적인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크로트프킨의 ‘자주인’의 의미와 신동엽의 ‘전경인’의 의미는 서로 통한다.
2. 제2기 분단체험과 문학습작기(1950~59)
4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나, 50년 6ㆍ25의 발생으로 전시연합대학에 소속되었다가 ‘국민방위군’에 징집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에서 날게를 먹고, 죽음의 원인이 된 간디스토마와 페디스토마에 감염되었다. 다시 대학에 돌아와 『노자』등의 독서 체험을 한다. 그의 산문을 보면 노자의 이상적 자연주의 사회관과 원시주의의 영향을 보게 된다. 결혼 후 58년 교편을 잡지만 디스토마가 재발되어 휴직하고 그동안의 독서로 얻어진 체험을 정리하면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썼다.
3. 제3기 문학활동기(1959~69)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신춘문예에 입선되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진달래 산천’, 『세계일보』에 ‘새로 열리는 땅’을 발표한다. 이후 서울과 충남을 오가며 헌책방 경영, 교사, 잡지사 기자를 전전하다가 1961년 명성여고 교사로 근무하게 되어 시작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신동엽은 4ㆍ19, 5ㆍ16을 체험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자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모순의 근원을 모순된 정치체제와 신제국주의로 상정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작품을 생산한다. 1963년에는 ‘산에 언덕에’, ‘아니오’ 등을 담은, 첫 시집 『아사녀』를 간행하고, 1967년 『52인 시집』에 ‘껍데기는 가라’, ‘3월’ ‘원추리’등 7편의 시를 실었다. 또한 같은 해 동학혁명을 현재화(顯在化)하는 서사시 ‘금강’을 발표한다. 그리고 분단 극복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생산하고 1969년 4월 17일 간암으로 영면한다.
* 윤병로(2003), 한국근ㆍ현대문학사, 명문당
* 김혜니(2002), 한국현대시문학사연구, 국학자료원
* 구중서ㆍ강형철(1999), 민족시인 신동엽, 소명출판
* 김영철(1998), 신동엽 시의 상상력 구조, 우리말글
* 민창홍(2007), 신동엽의 문학정신 연구,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양민정ㆍ채호석ㆍ신주철(2006), 1960년대 시문학의 지평,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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