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문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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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차문화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국에 온지 4달째가 다 되어 간다. 중국에 와서 4달 동안 많을 것을 보고 겪어 보았는데
궁금한 것이 생겼다. 중국인들은 비만인 사람을 얼마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왜 뚱뚱한 사람이 없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차 에 있다고 했다. 13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중국, 차의 종류도 천여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차를 즐겨먹어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도 뚱뚱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무조건 차로 인해서 날씬해 진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 와서 겪어본 결과, 중국인 들은 유난히 아침을 좋아하는 나라 같았다. 이유는 딱히 말 할 수 없지만 무언가 느끼기에 아침 형 인간들이 많다고 생각이 되었다. 지금은 겨울이다. 아침에 등굣길에 중국인 들을 보면 십중팔구, 열에 여덟, 아홉은 손에 물통 보온병을 가지고 다닌다. 그 안에는 차가 들어 있을 것이다. 13억명 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중국, 차의 종류도 천여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중국차 라고 하면 보이차와 오룡차 등 을 생각하게 되고 당연히 중국인들은 보이와 오룡차를 많이 마실 거라고 생각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실 중국인들은 녹차를 가장 많이 마신다고 한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중국에서 다예 라던가 차관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며 그냥 유리잔에 녹차 잎을 조금 띄워서 우려먹거나 유리병에 차 잎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며 마시기도 하고 했지만 요즈음 차 가 널리 알려지고 차 문화가 발달하여서 차관이라고 하는 전통 찻집도 많이 생겨나고, 다예사가 우려 주는 차를 마시려 한국에서 마시는 차 값의 두, 세배를 주어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13억 인구가 사랑하는 중국의 차의 역사, 문화,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자.
1.中國 茶의 歷史
中國에서 언제부터 차를 마셨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없지만 中國 最古의 史인 의 草篇에 도가 나오므로 적어도 3,000년 전에 차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문헌상 차 마시기를 즐기는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BC 59년의 일이다.
그 후 魏晋 시대에 접어들기 직전에 劉 玄德이 아직 돗자리를 짜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玄德에게 洛의 명차를 죽기 전에 한 번 맛보고 싶다고 하였다. 당시의 차 값은 오늘날로 치면 보석과 같은 정도였으므로 시골 청년의 푼돈이 차 값을 치룰 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상인들은 玄德의 효성에 감탄하여 한줌 쥐어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즉 당시의 차는 그만큼 대중들과는 거리가 있던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晋이 들어섰는데, 晋中에 의하면 安曾은 손님을 초청하여 茶果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로 보면 이때쯤 왕실이나 귀족사회에서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상당히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南北朝時代를 마감하고 中國을 통일한 隋 때는 文帝가 그를 괴롭힌 두통을 차를 마셔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다. 唐 때에는 차 마시는 습관이 安의 시중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 무렵의 차는 녹차로 만든 固形茶가 위주였다. 찻잎을 따서 찐 다음 쌀과 함께 절구에 넣고 빻아 빈대떡 모양으로 굳힌 茶 인 고형차를 다시 에다 넣고 갈아 가루로 만들어 따뜻한 물에 타서 마셨다. 육우가 茶을 짓고, 글씨로도 유명한 卿이 三癸亭을 지어 차 마시는 옳은 법도를 세상에 펴낸 8세기 중엽, 中國의 茶道는 하나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당 시대에 있어 茶器는 茶碗 이 주로 쓰였지만 急 나 茶托도 등장하였다. 육우는 越州의 다완 을 최고로 쳤다. 이 때의 주요 차 생산지로는 浙江, 四川, 湖南이 꼽힌다.
차에 대한 세금은 당나라 때부터 생겼다. 당나라는 차값의 1할을 세금으로 거두어 들였으나 차츰 이 비율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차를 취급하는 상인이 지나는 길목에서 또다시 세를 징수하였기 때문에 밀거래가 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헌에 차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宋 때에는 차에 대한 세금을 茶 라 하지 않고 茶 라 하였다. 宋은 또한 차의 생산지에 관리를 파견하였고 그 생산량의 일부는 조세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사들여 고가로 판매케 하였다. 이때는 이미 차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어 생활 필수품화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宋의 재정수입의 1/4이 차의 전매수입에서 들어올 정도였다.
차의 대중화와 더불어 차의 제조법도 개량되어 당나라 때의 茶는 사라지고 茶가 등장하고 膏茶末茶 - 지금 일본에서 많이 마시는 말차는 이 방법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 하겠다로 발전하였다. 연고차에는 龍, 麝香 따위의 고급 향료가 첨가되어 궁중으로 들어가는 공물로 귀중하게 다루어졌는데 福建, 建安의 연고차가 특히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