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폭력적 역사에 대한 폭력적 자아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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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류의 폭력적 역사에 대한 폭력적 자아성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읽고 나서,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쓰인 소설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단편집 “카스테라” 이후 거의 본격화 된, 키치적 문체에 4차원적 상상력을 결합시키는 박민규 특유의 글쓰기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다. 소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실험적인(?) 형태가 독자들의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지적 탐구가 일반 독자들에 의해 이뤄지기가 더더욱 힘들어 보인다. 한국의 일반 독자들의 현실은 그리 내면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민규의 소설은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처녀작 “지구영웅전설”에서부터 “핑퐁”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의 식지 않는 관심 속에 있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키치적 문체와 4차원적 상상력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름 아닌 독자들 삶의 내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문장과 상상력은 “트렌디”한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핑퐁”은, 발표된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한-미 권력관계를 바나나맨과 슈퍼맨의 관계로 갖다 붙이더니, 한국 프로야구 태초에 있었던 최악의 오합지졸 팀을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로 꾸며 대는가 하면, 아버지와 학교와 중국을 냉장고에 집어넣은 다음, 이제는 전 인류를 언인스톨 해버리고 있다. 이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글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없는 내면의 여유 탈탈 털어가면서 작성된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작가의 죽음”을 말하며, 동시에 “독자의 부활”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이제, 작가의 의도를 찾아 헤매는 부질없는 여행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정답을 필요로 하는, 정답이 없으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기호 권력의 수혜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오히려 정답이 없는 텍스트 속을 헤엄칠 때,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정답을 만날 수 있다. 기왕에 없는 내면의 여유까지 탈탈 털어가면서 일어섰으니, “부활한 독자”의 길을 걷는 편이 아무래도 즐겁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핑퐁”이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를 찾기 위해, ‘핑퐁(탁구)’을 중심으로 하나씩 밝혀나갈 계획이다.
탁구의 정체
자신의 라켓이라는 건 말이다, 말하자면 비로소 자신의 의견을 가진 것이란 얘기야
-p46
처음 못과 모아이가 세끄라탱을 찾아갔을 때, 세끄라탱은 말한다. 자폐형 왕따인 못은 펜홀더를, 반대로 전지적 왕따인 모아이는 셰이크핸드를 선택함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의견을 가지게 된 두 소년은 벌판의 탁구대에서 종종 탁구를 치게 되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소외된)펜홀더와 (소외된)셰이크핸드의 대화와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탁구공의 왕복에 발맞춰 진행되는 둘의 대화 장면까지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소설에서의 탁구라는 것이 일종은 “대화”라는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대화는 점점 낯선 방향으로 환유된다.
말하자면 그런 일들은 숱하게 있었어. 2차대전 땐 독일과 연합군 양측이 서로의 합의 하에 함포로 탁구를 친 적도 있었고, 월남전에선 클레이모어로 심판과 상대를 속이는 게 크게 유행하기도 했었지…(중략)…돌이켜보면 탁구는 목숨을 걸거나 뺏는 가혹한 장치였어. 스딸린과 루즈벨트의 시합은 너도 잘 알테고…
-p112
세끄라탱의 이러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못과 마찬가지로 맛이 갔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과 연합군, 스딸린과 루즈벨트라니. 하지만 그들 역시 대화를 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가는 것이 탁구공과 같은 무게의 언어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러한 유사성에 힘입어 어쩌면 개인과 개인의 단출한 대화의 의미를 띠는 것에 그칠 수도 있었던 탁구가 이제는 역사적으로 대립된 것들의 충돌로 까지 확장된 의미를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