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물 창조를 위하여 극작 상의 인물 창조
현대 연극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향은 완화된 듯 보이지만 극작술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하다. 관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소통한다.
그러나 몇몇 현대 연극들은 이러한 기존의 인물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법을 거부하고 보다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연극의 사조라는 것이 곧 그 시대의 특수한 세계관의 작용이라고 볼 때,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가 제시하는 인간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특히 연극의 다양한 제반 요소들이 부각되고 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인물이라는 요소 역시 다양하게 변용, 취급되는 듯하다.
기존의 귀족 중심의 인물에서 탈피하여 ‘개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사실주의는 새로운 인물에의 접근법을 제시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다른 의미들은 제외하고 극작의 관점에서 사실주의는 사실에 최대한 근접한 극적 환상을 창조하기 위해 일상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고 이는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결과 이후 현대 연극의 수많은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개인이며, 이제는 이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 인물 구축과 어긋날 경우 자칫 비난을 받기 일쑤이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인물 구축은 자연주의자들에 의해 더 극단화된다. 인간을 유전과 본능, 그리고 환경의 산물로 본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러한 극단적인 인물 구축은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극단적인 인물 구축 방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주의자들이 갖고 있었던 인간관의 한계 때문이리라.
한편 상징주의자들에게 인물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다. 상징주의가 사실주의에 대한 반기를 든 사조라는 점에서 인물의 창조 방식도 당연히 다르게 제시된다. 총체적 진실을 추구한 상징주의는 추상적인 여러 연극 요소들을 부각시키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인물 역시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물이 아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물로 제시된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이름을 갖는 인물이 아닌 노인, 딸 등과 같이 역할에 충실하여 극의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인물들을 제시한다. 또한 그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항들은 거의 노출되지 않으며 철저하게 총체적 진실을 제시하기 위한 연극의 한 요소로 등장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표현주의에서도 유사해 보인다. 표현주의의 인물 역시 이름이 명시되기 보다는 역할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명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주의의 인물들은 좀 더 구체적인 극적 기능을 부여받고 이를 수행하는 인물들이다. 이는 표현주의가 상징주의가 의도했던 추상성 보다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인 듯 싶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로써 인물은 좀 더 적극적으로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극장주의에 이르러 연극은 자신의 속내를 관객들에게 솔직히 드러낸다. 이를 위해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역시 인물이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연극 속 인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관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한다. 이제 인물은 연극과 관객들 사이에서 둘을 매개하며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서사 연극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서사 연극에서 인물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관객들의 비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서사 연극이 그 나름의 목표 - 소외효과를 통한 비판적 거리두기 등 - 를 구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관객들의 몰입을 초래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인물 구축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관객들은 자신들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이 무대 위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갈등을 보며,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인물들과 더욱 밀착하게 되고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서사 연극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제 인물은 좀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존재로 새롭게 위치하게 된다. (르네상스 이전의 연극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재발견되었다는 것이 더욱 적합한 표현일 것이지만.)
서사 연극이 의도한 소외효과는 부조리 연극에서 더욱 잘 구현된다. 다시 제 4의 벽 너머로 들어가 위치한 부조리 연극의 인물은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행동을 통해 자신들을 드러낸다. 이 인물들은 구체적인 과거와는 유리된 듯 보이며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상황에 몰두한다. 따라서 인물들은 개별적인 사항들이 대부분 생략되고 필요한 몇 가지의 요소로만 구축된다. 이름은 있으되 그들의 개별적인 과거의 일 등은 알 수 없다. 또한 타인과 소통하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기 때문에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인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부조리 연극이 제시하는 극적 환상과 어우러져서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주의가 제시하는 인물보다 더욱 생생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축되고 제시되어온 인물은 그러나 제의의 연극에 이르러 그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것처럼 보인다. 제의의 연극이라는 범위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또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집단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제의의 연극은 관객과의 거리를 허물고 직접 참여시킴으로써 인물 자체를 존재 의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측면에서 인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인형의 적극적인 활용이라든가, 비언어의 연극 등이 요구하는 바는 기존의 인물 개념과 다른 새로운 인물의 구축을 요구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연극에서 차지하는 인물의 비중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효한 듯 보인다. 그것은 인물이 연극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있으며 특히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의 구축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인간 복제, 사이보그 등과 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홀로그램, 원거리 통신 등의 출현은 새로운 인물의 창조에 자극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우리는 인간들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계와 문명과 우주와의 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새로운 연극 방법론과 함께 모색되어야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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