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몽십야 런던탑 작품 분석
일본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천 엔짜리 지폐, 그 지폐와 함께 그의 초상은 일본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등의 과거 인물이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폐와는 달리 근대인물이 이렇게 가장 쉽게 통용되는 지폐에 도안 인물이 되어있는 것만을 봐도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는 해외에까지 그 명성이 널리 전해져 일본의 경제발전과 더불어서 중국, 미국, 영국을 비롯한 국내에서도 일본 근대작가 가운데 가장 폭넓게 연구되고 있는 작가이다.
* 나쓰메 소세키 (1867~1916)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1867년 1월 5일에, 당시는 아직 에도(江戶)라고 불리고 있었던 도쿄의 우시고메 바바시타 요코초(현재 도쿄의 가장 중심가인 신주쿠쿠 기쿠이초)에서 태어났다. 나이 어린 나쓰메 소세키는 자신이 어떤 시대에 태어났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메이지 유신이 한창일 때 태어나, 격동의 시대에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었던 도쿄에서 자랐다고 하는 것은 그의 문학에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일이다.
5남 3녀 가운데 막내둥이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1890년에 동경제국대학 문과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한 뒤 곧 교단에 서서 동경 고등사범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1895년부터 이듬해까지 시코쿠의 마쓰야마 중학교 영어 교사를 한 적도 있다. 그때의 교사 생활의 체험을 살려 후에 발표한 작품이 도련님(坊っちゃん) 이다. 이후 나쓰메 소세키는 규슈의 구마모토에 있는 제오고등학교로 학교 근무처를 옮겨 교감 대리까지 되었다. 그런 와중에 1900년 5월에 갑자기 문부성으로부터 제오고등학교 현직에 있는 채로 ‘영어 연구를 위해 만 2년 간 영국으로 유학을 명 한다’라는 사령장을 받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문부성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영어 연구를 위해 유학을 명령받은 것이었다. 그해 10월 런던에 도착한 소세키는 영문학 강의를 받기 위해 명문대학을 찾아다녔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영문학은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라틴문학과 그리스문학 강좌 일색이었다. 기대가 크게 어긋났지만 세익스피어 전공자인 크레그 교수 등에게 개인지도를 1년 정도 받는다. 런던에서의 유학 생활은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도 깊은 고독을 심어주었다. 그는 서양과 일본의 격차를 확인하면서 아울러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과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시각을 키워갔다. 약 3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동경제국대학의 강사로서 영문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영문학자로서의 그의 이름은 차츰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자신은 이상하게도 대학을 갓 졸업할 무렵부터 일본인으로서 영문학을 연구하는 일에 불안과 허망함을 느껴 오고 있었다. 영국에 유학해서 영문학을 낳은 토대를 몸소 느끼게 되었을 때 그 느낌은 한층 강해져서 교직 생활에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에 빠져 있던 나쓰메 소세키가 노일전쟁이 끝나던 해인 1905년에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통해 알게 된 친구 다카하마 쿄시(高浜虛子)의 권유로 쓴 작품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이어서 마쓰야마중학교 영어교사 시절의 체험을 토대로 한 『도련님(坊っちゃん)』 을 1906년에 라는 잡지에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에 『풀베개』를 발표했다.
그는 예전부터 예민한 성격탓에 신경쇠약으로 위병을 얻었는데 그로 인해 1916년 『명암』을 연재하던 중 12월에 이르러 위궤양으로 인한 내출혈로 불귀의 객이 되었는데 항년 50세였다.
* 작품의 줄거리.
『몽십야』 - ‘몽십야’는 첫 번째 밤부터 열 번째 밤까지의 꿈과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로, 삶과 죽음 혹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벌어지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각각의 꿈 이야기는 모두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꿈이 아닌 현실에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고 용납되어선 안돼는 상황이 이어진다. 다분히 몽환적이고 우울하기까지도 한 이야기들이 얽혀 딱히 줄거리를 쓰기 힘들 정도로 읽는 이들을 그가 꾸었던 꿈 안에서처럼 모호한 공간으로 이끌어간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을 소개하자면 제1야에서 주인공은 지금 곧 죽어가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 여인은 당장 죽을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고 오히려 청조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여인은 주인공에게 자신이 죽으면 백년간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주인공은 승낙한다. 곧이어 여인은 죽고 주인공은 여인을 묻는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백년을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고 어느새 그 무덤에서는 하얀 백합이 핀다. 그리고 주인공은 백년은 이미 와있음을 깨닫게 된다.
『런던탑』 - ‘런던탑’은 화자인 주인공을 바로 소세키로 동일시해도 될 정도로 기행문의 문체로 주인공과 작가를 일치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영국으로 유학을 와있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런던탑을 구경했던 것을 회상하며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 인상이 얼마나 강렬한지 다른 사람들이 또 한번 런던탑을 보고자 동행을 권하여도 한사코 주인공은 거절할 정도였다. 처음에 느꼈던 런던탑의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유학초기에 지리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길을 나섰고 우연처럼 런던탑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묘한 기운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위병의 모습이 현실인지 환영인지, 내가 과거로 와있는 건지, 과거가 내 앞에 와 있는 건지, 갑자기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런던탑의 묘한 분위기가 주인공을 점차 탑(감옥)의 깊숙한 내부로 이끌고 간다. 런던탑에서는 살아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어린 에드워드 5세 형제, 단두대 아래 목을 들이밀면서 끝까지 당당했던 제인 그레이 등. 주인공은 런던탑 안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탑 자체가 영혼들의 외침으로 들썩이는 느낌마저 갖는다. 과거와 현재가 교착되는 시간여행을 하고 나니 탑을 빠져나온 이후 만난 여인과 아이 그리고 까마귀조차 그는 현실 같지가 않다. ‘나’는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환영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현실일까. 의문에 싸인 채 하숙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집주인으로부터 런던탑에 대한 환상과 신비감을 깨게 만드는 이야길 듣는다. 까마귀도, 낯선 여인이 읊조리던 시도, 관광지가 되어버린 런던탑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바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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