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외딴방 작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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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경숙의 외딴방 작품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경숙의 외딴방은 16살 때이던 1978년부터 1981년까지를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
79년 까지 우리나라는 유신정권(=제4공화국)하에 있었다. 유신정권은, 강력한 통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권위주의 통치 체제였다. 특히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였으므로, 박정희의 영구 집권이 가능하게 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장기적인 독재 체제가 이루어 졌다. 같은 해,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가 피살된 후 유신 체제는 끝이 나게 된다.
이후 국민은 민주화를 요구하였으나 ‘12.12 사태’로 군사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이를 억압하였다. 계엄령 철폐와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시작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계엄군의 과잉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이에 시민군이 결성되어 계엄군과 시가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과 학생이 희생되었다. 비록 실패하였으나,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수 많은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79년 10월 26일~80년 5월 17일 사이를 서울의 봄이라고 일컫는다. 서울의 봄은 5.18 민주화 운동이 무력진압 되면서 종결되었다.
80년 8월 4일,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국보위) 에서는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겠다는 명분 아래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였다. 허나 처음의 명분과는 달리 억울하게 검거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순화교육이라는 명분하에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받았고, 가혹한 방법의 훈련을 강행했다. 그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고, 2500여명이 정신장애 등의 상해를 입기도 했다.
국보위의 발족으로, 각 사회기관 단체는 강제성을 띤 부조리 추방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7월, 60개 학교가 부조리 추방을 다짐했고 경제단체가 정화대회를 열기도 했다. 19일에는 자신의 부조리를 스스로 신고하지 않아 연행되는 사람들도 있었고, 144명이 직위해제 되기도 했다. 입시를 개혁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했고, 이것이 전국으로 번져 각 지역별 직장단위로 정화대회들이 열리고 정화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81년부터는 국무총리 직속기관으로 사회정화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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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적 배경은 영등포이다.
영등포는 경인 공업지대의 핵심 지역 중 하나다. 처음 공업이 발달한 것은, 과거 일제의 개발 탓이다. 공업지대는 1930년대, 총독부의 공업화 추진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후 61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60~70년대 경인 공업단지는 한국 최대의 공업지대가 된다. 그 중의 한 축을 영등포가 담당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 공업화의 진전으로 대규모 사업장이 등장하였고 노동자의 수도 크게 늘어났다. 이들 노동자들을, 산업 역군(;일정한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꾼, 혹은 공사장에서 삯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