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하고나서 처음으로 날 곤란하게 했던 것은 날씨에 대한 적응이었다. 9월이라서 가을로 접어들거라 생각한 나로선 가을옷과 겨울옷만 챙겨왔을 뿐, 여름옷은 별로 챙겨오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11월초까진 덥고 겨울이 무척 짧은 곳 이라고 한다. 남부지방이라서 그런지 태양이 비치는 강도가 엄청나서 살이 따가울 지경이고 현지인들은 양산을 저마다 펼치고 다녔다. 자주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들도 쓰고 다닐 지경이었다. 덥기도 더웠지만 습도 또한 높았다. 비도 자주 오는 곳이라 방에 제습 가능한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정말 한국인은 적응하기 힘든 곳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에어컨이 없으면 살기 힘든데 중국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에어컨이 제공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방엔 에어컨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큰 선풍기가 천장에 붙어있었고 습도를 조절하기위해 방문을 열어두며 빨래는 전부 창가 밖에 있는 봉이나 베란다 위에 걸어두었다. 심지어 날씨가 안 좋아 비가 오는데도 밖에 걸어두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다른 기숙사는 가보지 못하여 상황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엔 코인세탁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손빨래를 하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로 적응하기 힘든 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남방지역이라 더운 환경 탓에 음식은 짰고 중국음식의 특징인 기름진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더운 날씨에 기름지고 뜨거운 음식을 먹자니 찬물이 저절로 들어갔고 그 탓에 복통과 설사를 해야만 했다. 한두 번 하고 말겠지 하는 심정으로 계속 찬물을 먹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가 되었고 결국 몸이 상할까봐 살기위해 뜨거운 물을 먹자는 생각으로 차와 병을 사서 뜨거운 물만 먹고 보니 어느새 복통과 설사는 사라졌다. 음식의 조화도 한국에선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조합도 많았다. 누가 밥에 토마토를 넣어 먹는다는 생각을 할까. 향신료도 음식적응에 힘든 요소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맛을 보고 정보를 교환하며 어느 것이 우리가 먹기에 좋은 건지 알아냈고 그 음식은 기억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먹기 위해 음식재료 단어를 먼저 기억했고 주문하는 방법과 점원을 부르는 방법, 음식을 짜지 않게 주문하는 방법 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단어부터 알아가게 되었다.
어느 정도 음식 문제와 기후문제에 적응하고 기숙사 안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위해 이곳저곳 학교주위를 둘러보고 학교 주위에서 살수 없는 생활용품을 사기위해 큰 마트를 찾아가 보았는데 한국과 별 차이가 없었다. 놀란 것은 김치라던가 된장, 고추장을 판다는 점에 놀랍고 반갑기도 하였다. 음식은 대체적으로 쌌지만 음식이 아닌 다른 물건들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쌌다. 마트뿐만 아니라 번화가 쪽도 돌아다녀봤는데 가흥에선 庭街라고 불리는 거리다.
이곳엔 백화점과 상점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고 백화점 비슷한 건물을 들어가 보면 한국의 지하상가 비슷한 상점들이 즐비어 있었다. 적지 않게 한국음식점도 보였고, 전자상가, 체인음식점이 많았다. 庭街엔 남자옷을 사러갔지만 嘉에선 남자들이 별로 꾸미는걸 하지 않는 모양인지 남자옷은 별로 없었고 여자옷과 악세사리, 가방이 엄청 많았다. 백화점이나 메이커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비용과 비슷하거나 좀더 비싼 것도 있었고, 백화점이 아닌 길거리나 조그마한 백화점은 품질은 보장 못하겠지만 싼 물건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역시 물건을 사더라도 중요한건 의사소통이었다. 하나하나 단어를 잡아가며 설명하자니 엄청 힘들었고 중국어가 힘들어서 영어와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사고 싶은 물건을 설명해야만했다. 중국인들이 친절해서인지 아니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우리의 느린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에 해당하는 물건을 이것저것 소개해주었다. 비록 간단한 단어만 써서 물건을 사야했지만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숙사엔 관동대학생만 있는 게 아니라 명지대학생도 있었다. 우린 5층에 살았고 그들은 3층에 살았는데 처음에 이것저것 이곳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여 그들과 친해졌고 그들 중 교회를 다니는 학생도 있어서 일요일 같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물론 중국교회는 못가고 한인교회를 갔는데 오랜만에 한국인을 보고 한국음식을 먹어서인지 한국생각이 절로나 기분이 좋아졌다. 충전하는 느낌이랄까. 종교적인 편안함도 있지만 고향에 온듯한 편안함도 있어서일 것이다. 처음이라 택시를 타고 갔지만 그 다음 부터는 교회에서 북문으로 차가왔고, 기숙사에 돌아올 때도 데려다주어서 교통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회엔 이곳 嘉에서 공장을 다니는 분들이 많이 다닌다고 한다. 언제 기회가 난다면 이곳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환경은 어떠한지 묻고 싶었다.
1주정도 수업을 듣고 현지 교수님께서 중국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과에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한 명당 2~3명 정도를 소개시켜주셨는데 간단한 인사말과 자기소개정도를 하고 시간이 남아서 그 시간을 어떤 말로 보내야할지 서로 머쓱해 했다. 더욱이 내가 소개받은 친구들은 좋아하는 취미가 서로 안 맞아서 더욱 머쓱해 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한 이야기는 이곳에 와서 무엇을 했고 어떤걸 먹었고 추천해주는 음식은 무엇이냐는 등 서로 공통적인 부분을 찾기 위해 애썼다. 결국 폰번호 교환까지 하였으나 그 이후엔 연락두절상태. 그 둘은 아직까진 연락을 안 하고 있다. 그나마 한번 씩 연락 온 것은 中秋에 안부문자 하나씩 보낸 것이 전부였다. 소개받은 친구들하고는 그렇게 진행되었지만 다른 학생들과 우연히 만나서 친해진 친구들이 생겨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교수님이 소개시켜준 수많은 친구들 중 그들은 우릴 기억해주고 있었고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해준 덕에 그 친구들이 더욱 반가웠고 친해지기가 쉬웠다.
기숙사는 우리 캠퍼스 쪽이 아닌 다른 캠퍼스였고 만난 날 중국친구들의 기숙사를 놀러가다가 어디선가 유에프오 비슷한 孔明을 보았다. 호기심 반, 해보고 싶다는 욕심 반으로 그렇게 사귀게 된 친구들과 中秋 마지막 날에 교내 운동장에 모여서 孔明을 날렸다. 그 孔明은 소원을 적어서 귀퉁이를 잡고 아래쪽 가운데 연료에 불을 붙이면 조금 후에 날아가는 식인데 처음 날릴 때는 이게 과연 날아갈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아주 잘 날아갔다. 나중엔 떨어지는걸 보지도 못할 정도로 높고, 바람을 타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날 우리는 孔明을 세 개나 날렸다.
중국 친구들 중엔 한국어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가 있어서 우리에게 하나씩 배우고 우린 되려 그 친구에게 중국어 발음과 단어, 말 등을 배우고 있다. 아직까지 깊이 있는 대화를 못해서 답답해 하는건 서로 마찬가지지만 좀 더 공부를 하고 대화에 익숙해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에오고 봉사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요즘시대에 자기소개서에 한 줄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에 선택한 점도 있지만 아직까지 내 중국어 실력은 유치원 정도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걸 알기에 民工 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정한 걸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한 번도 가르친 적은 없지만 인사를 하기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학생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학교를 찾아간 적은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걸어서 20분정도를 가야 民工 학교가 나온다. 그날은 모두 인사를 하러가야 했기에 버스를 타고 갔지만 평소엔 같이 온 형이 차를 끌고 같이 가기로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모두 밖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학교엔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학생도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작은 아이들을 챙겨주며 놀아주는 큰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수에 비해 학교가 너무 작아보였고 한반에 아이들의 수도 선생님이 총괄하기에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종이치자 아이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자기 반으로 움직였고 수업을 받기위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건강미가 넘치는 아이들로 반은 가득했다. 우리가 가르쳐야하는 학년은 5학년, 같이 온 형이 한반을 가르치면 다른 한반은 우리가 가르치는 식이다. 수업시간은 40분가량 이었고 한주에 2~3명씩 번갈아가며 가르치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인사를 하러 우리들이 줄줄이 들어가는 순간, 아이들의 미소가 만연하였고 한명씩 우리가 인사를 할 때 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老 好~!” 라는 인사를 건네받았다. 얼마나 우렁찬지 마치 이곳이 학교인지 군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같이 온 형에게 작년에 무엇을 가르쳤는지 대충 설명을 들었고, 앞으로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돌아왔다. 그 아이들이 커서 어디서 일을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1년 동안 있으면서 가르치는 한국어가 그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나 말들을 가르칠 생각이다. 이 가르침으로 그들의 삶에 하나라도 더 보탬이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庭街 근처에 있는 강 근처를 밤에 가보았는데 집집마다 붙어있는 등불이 밝고 아름다웠고, 강 위에 있는 배들도 은은한 전구불로 강을 비추고 있었다. 한국의 야시장과 같은 풍경이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누방울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부채나 열쇠고리, 나무로 만든 키보드 등 여러 신기하고 잡다한 물건들을 팔았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어디선가 중국 전통악기를 켜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작은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삼삼오오 주변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고 풍경과 어울리는 음악에 우린 잠시 소극장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학교 주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랬고,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본다면 더욱 아름다운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중국에 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생활엔 점차 적응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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