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경우는 물론이고 산문의 경우에도 복고적인 관점에서 육경의 의법을 최고의 규범으로 간주하는 동성파(桐城派)의 고문과 문장론이 청대를 주도했다. 이렇듯 시문을 주축으로 한 사대부계층 정통문학은 복고와 예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민간문학은 나름대로 상당한 발전을 이룬다. 물론 정치권의 강한 억압과 교묘한 문화정책으로 인해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민간문학은 정형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가변성과 기동성을 발휘하여 어느 정도 창조성을 확보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볼 때 현실과의 연관성을 상당한 정도로 유지할 수 있었다. 명대에 이어 희곡도 성행했지만 청대 문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문학적 성과를 거둔 것은 장편소설 양식이었다.
2. 발달 원인
1) 소설에 대한 인식 제고
김성탄(金聖嘆) 이어(李漁) 원매(袁枚) 기윤(紀) 등의 문인들이 소설의 가치를 높이 선양하였다. 특히 김성탄은 《수호전》과 《서상기》를 《이소(離騷)》 《장자(莊子)》 《사기(史記)》 《두시(杜詩)》와 함께 ‘6재자서(六才子書)’라고 하여 소설을 정통문학과 동렬에 놓았다.
2) 독자층의 확대
일반 민중 가운데 소설을 감상할 만한 소양과 여유를 갖춘 사람이 늘어났다.
3) 인쇄 제지술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로 일반서적과 함께 소설책이 널리 보급되었다.
4) 지식인들의 불만 토로 수단
만주족의 지배 아래에 있던 한족 지식인들이 자신의 불만을 소설 창작을 통하여 토로하고 해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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