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무엇을 위한 항해인가
대해적시대 그리고 바다
원피스는 대해적 골드로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사형대 위에서 골드로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상 최고의 보물 원피스를 찾아보라며 대중을 유혹하고, 대해적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지게 된다. 골드로저가 작품 안에서 참수형을 당한다는 것을 주목해 봤을 때, 이것이 기요틴에 의해 참수된 루이 16세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세계의 정치적 패러다임이 절대적 지배자에서 다수의 대중들로 넘어간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적 관점으로 봤을 때,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대해적시대가 지금 현재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를 의미한다면, 골드로저의 죽음은 소련장벽의 해체, 서독의 흡수통일 등에서부터 시작된 사회주의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가상세계 안에서 대해적시대의 개막 이후 많은 해적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피튀기는 약탈과 경쟁은 현실에서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급격히 과열화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겹쳐볼 수 있다. 시간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배경도 우리의 사회를 잘 반영한다. 작품의 실질적 배경이 되는 바다는 대부분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공간적인 배경이자 온갖 것들이 뒤섞인 혼돈의 시대 그 자체로, 그 안에서 절대다수인 해적들은 동료로, 친구로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죽고 죽여야 하는 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현실세계의 우리 역시도 사회 안에서 친구를, 동반자를 때로는 원수를 만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로,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적으로 대치하기도 하는 혼돈의 사회이다. 주인공 루피가 10여년의 훈련을 마치고 동료를 모집하기 위해 통통배를 타고 나가는 작품의 도입부는 결국, 학교라는 배움터를 떠나 전쟁터같은 사회로 나가는 현재 우리들 20대들의 뒷모습에 다름아니다.
악마의 열매
악마의 열매는 원피스를 만화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로 현재 한국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쓰이는 ~~열매라는 유행어는 이것에서 따온 것이다. 원피스 이전에도 컬트적이지만 해적을 소재로 한 만화는 존재했음에도 원피스를 이처럼 압도적인 텍스트까지 끌어올린 것은 악마의 열매라는 요소가 작용한 바가 크다. 악마의 열매는 원피스 안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열매로 먹은 사람은 특이한 초능력을 갖게 되지만 바다의 저주를 받아 맥주병이 되는 과실이다. 관용적으로 우리는 "신은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라거나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뛰어난 점이 하나씩은 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가진 사람(개별적 재능뿐만 아니라 축적된 부나 명예)을 종종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잘못 박은 못처럼 튀어나온 그런 사람들에게 대다수 범인들은 그렇게 관용적이지 못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바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좁은 의미의 사회에 대한 비유라면 악마의 열매 능력자에게 특출난 능력대신 주어지는 헤엄치는 것이 불가능한 몸이라는 반대급부는 뛰어나기 때문에 비난받는 현재 사회의 역설적 모습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다. 원피스 작품 안에서의 대부분의 갈등이 이 악마의 열매능력자들에 의해 이끌려가는 것 또한, 이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갈등 또한 소수의 (무언가) 가진 자들에 의해 발현되고 해결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독자들은 다양한 악마의 능력 중에서 상대적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고무의 능력을 갖춘 루피가 강한 적을 쓰러뜨릴 때,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힘없는 대다수 약자 중 하나가 힘을 갖춘 강자를 쓰러뜨리는 것에 자신을 비춰보기 때문이다.
원피스는 존재하는가
원피스라는 보물을 쫓는 만화인 본 작품에서, 역설적으로 아직도 원피스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만, 몇몇 언급으로 그것이 잠정적으로 실재한다는 것만이 밝혀졌을 뿐이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그 존재가 점점 더 구체화되기보다 모든 적을 쓰러뜨리게 되면 가질 수 있게 되는 추상적인 존재로 격하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의 삶도 어릴 때에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생활에 쫓겨서 우선순위가 뒤바뀌지 않는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뀔 때, 우리는 체념하고 또는 절망하거나 무감각해지지 않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현재까지 64권이라는 기록적인 장기간 연재를 이루고 있는 원피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마도 50권대 후반에 펼쳐지는 정상전쟁 편일 것이다. 골드로저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해적 흰수염과 3대장으로 대표되는 권력, 해군의 대결은 모든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시민열사들의 항쟁을 떠오르게 한다. 원피스에서는 동료인 에이스를 구하기 위해 대 해적단인 흰수염해적단 전원이 해군본부로 쳐들어가 전투를 치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사회에서 약속된 정의로는 해적은 명백한 악이다. 하지만 또한 해적의 입장에서는 같이 밥먹고 자는 동료이고 가족이다. 여기에서 두 개의 정의가 충돌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법률로 대표되는 사회의 약속된 정의가 정말로 우리를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법보다 가까운 주먹, 주먹보다 가까운 돈,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권력의 불의는 때로 그것들이 지켜야 할 대상을 악으로 만들기도 한다. 원피스에서 이 전쟁의 결말은 어디 한군데에 치우치지 않은 채로 내려진다. 하지만 캐릭터의 입을 빌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정의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현재의 사회풍토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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