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톨로지(Narratology)
내러톨로지는 어떻게 스토리가 작용하는지, 어떻게 내러티브의 가공되지 않은 재료들의 의미를 파악하는지, 어떻게 그것들을 한데 묶어서 일관된 전체를 만드는지에 대한 학문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내러티브 구조, 스토리텔링의 전략, 미학적 관습, 스토리(장르)의 유형, 그리고 그것들의 상징적의 의미에 관한 학문이기도 하다. 전통적 관점에서 내러톨로지는 메시지 전달자가 메시지 수용자와 의사 소통하는 데 사용하는 형식에 관심을 갖는다. 누가 전달자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데, 영화에서의 내포 작가(스토리텔링의 주체이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표방하는 서술자)는 영화감독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여러 사람들과 공동 작업으로 스토리의 사건을 만들어 낸다. 관객이 알아차리기 힘든 영화 작가에 관한 문제는 영화가 보이스 오버(voice-over) 내레이션을 사용할 때 복잡해진다(p.337, 8-4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미국 1989). 보통 화면 밖에 있는 내레이터는 스토리 속 인물이기도 하며 사건을 해석하는 데 일조하고, 반드시 중립적이지도 또한 감독의 대변자도 아니다. 영화의 스타일에 따라 내레이션도 다르다. 사실주의적 영화에서 내포작가는 사건을 스스로 말함으로 사실상 보이지 않고, 스토리가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보인다. 고전적 내러티브 구조에서는 스토리텔러의 의도에 따라 스토리 라인을 만든다. 형식주의적 내러티브에서는 작가가 주제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사건을 강화, 재구성하는 등 공공연한 조작을 한다.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는 무엇인가? 스토리는 연대기 순으로 된 일반적 소재, 가공되지 않은 재료라고 할 수 있으며 플롯은 스토리 위에 구조적 패턴을 포개어 놓는 스토리텔러의 방법과 관계가 있다. 내포 작가는 인물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사건의 시퀀스에 인과 관계를 제공한다. 피터 부룩스 Peter Brooks는 플롯을 "내러티브의 디자인과 의도"라고 정의하는데, 플롯은 씬을 미학적 패턴으로 구조화하는 것은 물론 내포작가의 관점과도 연관되어 있다.
관객(The Spectator) 내러티브 논리와의 역동적 상호 작용에 능동적으로 가담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TV와 영화를 오랫동안 시청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플롯의 전개에 순간적으로 적응하게 되었다. 우리의 두되는 수많은 시청각적 언어 체계를 동시에 작동한다. 여러 학자들은 어떻게 관객이 끊임없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질서와 일관성에 대한 상식을 영화라는 세계 위에 투영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영화를 보기도 전 그 영화에 대해 일련의 기대를 갖는다. 주어진 시대나 장르에 대해 알고 있을 때 예측 가능한 변수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서부 영화는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지가 배경이 되며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대충 알고 있다. 내러티브가 전통, 관습, 역사 감각과 맞지 않을 때는 우리의 인식 방법과 태도를 재평가해 보려 한다(p338, 8-5, 불타는 안장, 미국 1973). 아니면 그 작품에 적응하거나 그 작품을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 그런 변혁을 거부한다. 내러티브적인 전략은 종종 장르로 결정된다. 서스펜스로 성공하는 영화들(스릴러, 정치물, 미스터리)의 경우 내러티브는 교묘하게 정보를 차단해 추측을 유발하게 한다. 반면 낭만적인 코미디에서는 결과를 미리 알아 결과보다는 과정이 강조된다. 영화 스타에 대한 사전 지식도 내러티브의 한계를 결정한다. 액션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관습적 러브스토리 영화에서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성격배우들이 나오면 영화의 내러티브의 본질에 대해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관객은 또한 제목으로 영화를 미리 판단한다. 「살인자 매춘부들의 공격 Attack of the Killer Bimbos」나 「원더미어 부인의 부채 Lady Windermeres Fan」는 제목만 듣고도 어디서 상영될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러나 「새미와 로지 함께 눕다 Sammy and Rosie Get Laid(포로노 영화같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사회 코미디)」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감독은 서두 부분에서 추진해 갈 내러티브의 전제를 설정하고 스토리 변수와 분위기를 결정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그 내러티브의 한계를 규정한다. 오프닝 씬은 내러티브의 발전과 끝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E.T.」에서 스필버그는 초자연주의의 오프닝 씬을 설정함으로써 영화의 중간과 후반부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에 대해 준비하게 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설명을 통한 오프닝 씬은 그 스토리의 시간을 설정해 주는데, 이 설명은 플래쉬백으로, 현재로, 또는 그 둘이 섞인 형태로 펼쳐질 수 있다. 설명은 또한 환상 장면, 꿈, 스토리와 관계있는 양식화된 변수들에 대해 기본적인 규칙을 설정해 준다(p.340, 8 ½, 이탈리아 1963). 플롯이 복합적일수록 우리는 더 교모해져야 한다. 감춰져 있는 것을 가려내고, 추리하고, 밝혀 내야 하는데 특히 스릴러, 탐정영화처럼 관객을 속이는 장르에서는 예기치 못한 반전까지도 탐색해야 한다. 플롯을 대할 때는 정말 수동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고전적 패러다임(The Classical Paradigm) 고전적 패러다임은 1910년 이래 극영화 제작을 지배해 온 특정 내러티브 구조를 묘사하기 위해 학자들이 만든 용어이다. 이것은 스토리 구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형이며 지배적인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이라고 하는 것은 실용성의 표준일 뿐, 반드시 예술적 탁월성 때문은 아니며 대부분의 영화가 이런 내러티브의 정형 formula을 이용한다. 연극 무대에서 비롯된 고전적 패러다임은 규칙이 아닌 일련의 관습이다. 이 내러티브 모델은 행위를 시작한 주인공과 그에 저항하는 경쟁자 간의 갈등에 기초한다. 다음의 씬들은 상승하는 패턴의 행위 속에서 이 갈등을 첨예화하게 되는데 인과 관계의 관점에서 각 씬들이 연계되고 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긴장 상황이 최고조에 달하여 주인공과 경쟁자가 노골적으로 충돌하다 맞대면 이후 극적 긴장은 결말로 가라앉는다(p.342, 8-9 고전적 패러다임). 고전적 패러다임은 극적인 통일성, 그럴듯한 동기화 그리고 그 구성 요소들의 일관성을 강조한다. 고전적인 구조에는 종종 이중적인 플롯도 있었는데 액션이라는 주 플롯과 병행되는 러브스토리나 러브스토리 속 주인공 연인들과 나란히 나오는 코믹한 다른 커플도 그러한 경우이다. 고전적 플롯 구조는 직선적이며 대개 여행, 추적, 탐색의 형식을 취한다. 심지어 등장 인물의 행동에 따라 그들의 성격이 결정된다. 사이드 필드 Syd Field는 "행위는 인물이다. 사람은 그가 말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고전주의자들은 목적지향적인 인물을 선호하고, 관객은 행위에 관심을 갖는다. 필드에 의하면 영화 각본은 3막으로 구성된다(p.343, 8-10). 첫 번째 막은 설정 setup으로 각본의 처음 1/4을 차지하는데 극적인 전제를 설정해 준다. 두 번째 막은 대립 confrontation으로 스토리의 중간 2/4로 구성되는데 이 안에는 반전이 포함되어 있다. 플롯이 급진전하고 위기감이 고조되어 갈등이 복잡해진다. 세 번째 막은 해결 resolution으로 스토리의 마지막 1/4을 이루는데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대립의 결과를 극화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롯 중 하나이며 고전적 패러다임의 교과서적인 예가 바로 버스터 키튼의 「장군 The General」이다. 그것은 필드의 3막극법은 물론, 프레이탁 Freytag의 반전된 V자 구조에 딱 들어맞는다. 키튼의 모든 장편 코미디는 똑같이 기본적인 희극형식을 이용한다. 버스터는 성실하지만 어색한 풋내기로 자신이 경외하는 사람의 환심을 사려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다음 날 잠에서 깨면 그는 새로운 사람으로 영화 앞 부분과 비슷한 행동을 계속 한다(p.344,「장군 The General)의 플롯 구조 개략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인위적인 플롯 구조는 형식주의 내러티브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연기나 수법 등은 엄격하게 사실적이다. 고전주의는 양쪽의 양식화된 극단적 관례를 뒤섞은 중간 스타일이다.
사실주의적 내러티브(Realistic Narratives) 전통적으로 비평가들은 사실주의를 삶과 연결시키고, 형식주의를 패턴과 연결시켰다. 사실주의는 스타일의 부재(不在)로 정의되고, 스타일은 형식주의자들의 관심거리이다. 사실주의자는 물리적 세계를 왜곡하고 투명하게 transparently 묘사하기 위해 기교를 거부한다. 반대로 형식주의자들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해 환상적 재료나 구름 잡는 것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비평가나 학자들은 사실주의를 스타일이라고 간주하며 인위적이고 정교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주의와 형식주의 내러티브는 둘 다 패턴화되고 조작되지만 사실주위적 스토리텔러는 패턴을 가리기 위해 조작되지 않은 삶과 같은 척 하지만 그것이 바로 허위이며 미학적인 기만이라는 것이다. 사실주의자는 처음, 중간, 끝이 분명하지 않은 플롯을 선호한다. 우리는 임위적인 지점에서 스토리에 가담하게 되고 명쾌한 갈등은 보지 못한다. 사건은 억지스럽지 않게 나타난다. 사실주의는 구조화되지 않고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마지막 릴이 돌아간 다음에도 삶은 계속 흘러간다(p.347, 투르러브, 미국 1989). 사실주의자들은 종종 자연의 순환, 예를 들어 사계절에서 구조를 빌려 온다. 또 일정기간을 둘러싸고 구조화되는데 가끔 중심에는 통과의례가 있다. 종종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내러티브의 일관성을 추측할 수 없다. 원형, 순환구조일 경우 더욱 그렇다. 로버트 알트만의 「매쉬 MASH」는 에피소드적이고 상호 교환적인 사건의 시퀀스이다. 그냥 실제로 일어나는 좀 별다른 몇몇 이야기들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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