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모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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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플라톤의 모방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저는 플라톤의 모방론에 대해 설명 하려고 합니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은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과는 조금 다릅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중시한 반면에 형이하학적 (비관념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였습니다. 따라서 문학 예술 등은 이데아의 하급 위치에 서 있으며 작가와 예술가 역시 국가 (폴리테이아) 건설에 불필요한 존재로 비난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행위가 근본적으로 모방, 즉 미메시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예술은 인간 삶에 대한 모방이므로 예술 작품은 인간 삶에서 가능한 무엇이 예술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 이론에 의하면 모방도 중요하지만, 추종, 즉 젤로스도 중요하다. 추종이란 모범적 작품 내지 모범적 작가의 범례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모방 이론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르를 연극이라고 간주하였습니다. 인간 감정의 순화, 즉 카타르시스는 주로 비극에서 나타납니다. 인간은 극작품을 대하면서 공포 그리고 동정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서의 순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론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이렇듯 모방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을 많이 업급하지만 저는 플라톤의 모방론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미학의 오디세이1 86-87페이지 모방의모방에서 플라톤과 그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를 보면 플라톤의 모방론에 대해 어렴풋이 알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개념을 추상하는 게 곧 이데아를 회상하는 거라…….하지만 그게하고 무슨 관련이 있죠?
플라톤: 답답하긴,가령 장인이 침대를 만든다 하세. 먼저가 뭐가 필요하지?무턱대고 톱과 망치를 휘두르면 침대가 만들어질까?
아리스토텔레스:아니죠 먼저 설계도가 있어야죠.
플라톤:그렇지 장인의 머리속 설계도를 침대의 이데아라 부르기로 하세. 장인은 이 설계도에 따라 평생 수백,수천 개의 침대를 만들어낼 걸세.물론 침대들은 모두 이데아의 모방이겠지?
아리스토텔레스:예 그것도 물질이라는 불순물이 섞인 불완전한…….
플라톤:자이제 어떤 환쟁이가 붓과 물감으로 이 침대를 그린다고 하세. 그건 뭘하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당연히 침대를 모방하는 거죠.
플라톤:그렇지 그나마 또 한번 불완전하게 말일세.결국 예술이란 가상의 가상.그림자의 그림자란 얘기 아닌가? 이렇게 예술은 진리의 세계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거라네. 알겠나?
여기서 플라톤의 마지막 플라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은 이 현실계에 존재하는 수 많은 아름다운 사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미, 즉 아름다움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미의 이데아로서, 절대적인 미요, 완전한 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감각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마음으로만 즉 개념적으로만 파악됩니다. 감각의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사물들의 아름다움은 한 때 존재했다가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상계의 조건 하에서는 완전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사물들에 공통된, 그것이 없이는 아름다울 수가 없는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현실계에 수많은 사물들이 아름다운 것은 이것들의 원인이 되는 아름다움의 원형이 이상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름다운 사물들은 - 비록 그것이 감각적인 세계에 속해 있어 불완전하긴 하지만 - 참된 미의 원형을 모방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미의 이데아를 어렴풋하게나마 일깨워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플라톤은 우리가 현상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미의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이전 철학자들의 모든 업적을 포괄하면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만들어 낸 플라톤의 대표적 주장이 바로 이데아론입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추구하였던 보편적 정의(定義)의 개념에 착안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개별적 사물들이 각각의 특성과 서로 다른 점들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어떤 것들은 같은 명칭으로 불리며 동일한 범주,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근거를 탐구하여 개체들의 전형 내지는 모범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를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상들이 분명히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책상’이라는 공통의 명칭으로 불리는 까닭은 바로 그것들 모두가 책상의 이데아를 닮아있고 책상의 이데아가 지닌 성질들을 나누어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사물들의 각 집합마다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의 이데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상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여러 책상들이 책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의 공통된 원형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책상의 이데아는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 머리 속에 지니고 있는 책상의 원형 또는 본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수들은 수많은 개별적인 책상들을 만들지만 책상의 이데아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책상의 이데아는 그 자체로 본래부터 목수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데아는 물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의로운 행위 등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다양한 형태의 정의로운 행위들이 정의롭다고 불리는 까닭도 바로 정의의 이데아를 나누어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데아의 세계를 형성해나가는데 이런 그의 생각에는 이전 피타고라스의 형상인으로서의 수, 파르메니데스의 이원적 세계관과 불변하는 참된 존재, 소크라테스의 보편적 정의 등의 생각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지닙니다. 첫 번째로 이데아론은 의미론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데아가 보편적 정의에 대응하는 것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데아론은 어떤 주어를 수식하는 보편적인 술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답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정의롭다’라는 명제가 있을 경우 이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의롭다’라는 보편적이고 다의적인 술어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정의로움 그 자체’ 또는 ‘정의의 이데아’와 관련해서만 그 의미가 파악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데아는 보편적인 정의 또는 의미에 대응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데아는 존재론적인 실체이다. 플라톤은 이데아가 완전하고 진정한 존재이며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통하여 존재에 관한 이원적 세계관을 확립하며 현실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진정한 세계에 대한 탐구의 계기를 마련한다. 세 번째로 이데아는 인식론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즉 현실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러한 진정한 존재로서의 이데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데아는 우리의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파악될 수 없는 것이므로 경험과 무관하게 이데아의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이 문제에 답하는 과정에서 플라톤의 변증론이 등장하며 이는 우리가 갖는 지식 일반에 관한 인식론으로 확대됩니다.

모방(模倣)이란 모사(模寫)와 비슷한 말이다. 모사란 본체 또는 원상(原像)과 아주 유사한 것 또는 닮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모방론은 작품 제작의 전제로 현존하는 것 혹은 현실적 존재를 시인하는 관점이다. 현존하는 것 또는 원상에 해당되는 것들은 그 숫자가 거의 무진장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시내·들꽃·구름 등을 노래한 시를 만나게 되고, 또 애정을 노래한 시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들은 일제치하를 산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민족에 대한 감정을 포착하기도 하며, 종교적 신념에 불타 있는 시들에서 시인이 스스로 참이라고 믿는 절대의 경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사 내지 모방의 실체가 된 여러 현상들을 가리켜서 Universe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모방론(模倣論)은 시론 내지 문학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경우다. 동양에서는 이미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에서 시 속에는 초목, 화훼에서부터 인간세계의 여러 현상이 두루 담겨 있다고 말한 것이 있다. 그리고 서구에서는 플라톤이 자신의 『공화국』 10장에서 모방의 이론을 전제로 하여 유명한 시인추방론을 내세운 바 있다. 이 중에서도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목이 요구된다. 플라톤의 공화국은 인간이 가져야 할 이상적 국가형태를 가리키는데, 거기에서는 그가 이데아라고 명명했던 진리가 그 이념이 된다. 그런데 플라톤의 생각에 따르면, 진리란 사물 속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만 포착·파악된다. 하지만 시 또는 문학은 일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만을 대상으로 삼는 데 그치기 때문에 이러한 진리로부터 멀어져 있다. 이러한 과정을 플라톤은 탁자의 예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즉, 그는 탁자라는 사물의 이데아를 지니고 있는 자(제1단계: 창조주), 이데아에 따라서 실제로 탁자를 만들어내는 사람(제2단계: 목수), 그리고 만들어져 있는 탁자를 대상으로 하여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자(제3단계: 화가 또는 시인)로 구분하고서, 예술가의 창작이란 실은 진리로부터 3단계나 벗어난 위치에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가의 모방이란 허위나 가식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생각에서 플라톤은 시인추방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뜻 보아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플라톤의 생각에는 상당한 난점이 있다. 우선 그는 시 자체가 갖는 독자적 존재 의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우주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진리의 변증법적 이해만을 중시한 나머지 스스로가 생각하는 절대관념의 세계, 곧 이데아의 개념을 시에 선행시키고 있다. 달리 말해서 인간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을 강조하고 있는 플라톤에게 있어서 시는 예술의 양식으로서가 아니라 진리나 정의, 덕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만 논단되고 있다. 이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 활동을 혼동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생각은 그 자체에도 자가당착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장인들이 시인이나 화가들보다 진리와 정의에 한 단계 더 가까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대화편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