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눈 뜰 때 장정일의 소설 쓰기
"나는 이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어요. 지금까지 소설이 씌어진 방식과는 좀 다르게 말이에요.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삶은 항상 미완성이다. 인간은 한평생의 계획과 미래를 설계해 놓지만 그것을 다 이루고 죽는 이는 많지 않다. 아니, 자기 자신의 삶을 애초의 계획대로 다 완수했다고 믿은 이조차도 그가 죽고 나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그의 종말로부터 다시금 비롯되는가? 모택동을 보라! 그리고,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는 하루의 할 일을 미처 다 완수하지 못해 다음 날로 미루는 데서도 단적으로 보여지지 않는가? 삶이 이러하거늘 삶의 반영 혹은 인생의 모사라고나 할 소설은 왜 완성되어여만 하는가? 삶이, 원래, 인가이란 게 이토록 불완전한 것인데도? 이런 의문들은 내가 겁없이 소설을 써보겠다고 덤비는 그 순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것이었고, 한 편의 소설이란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따라 시작되고 끝맺어지는 것이란 늙은 작문교사들의 교시는 나에게 강박으로 작용했지요. 하지만 그 늙은네들의 교시대로 소설이란 게 삶을 반영하는 것이고 인생을 모사하는 것이라면, 진짜로 그런 것이어야 한다면 말예요. 모든 소설가들은 자신의 소설을 중도에서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구요? 또 정말 소설이 삶을 반영하는 것이고 모사하는 것이라면 한 편의 소설은 끝내 완성되지 말아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그 늙은 조교들은 한 아가리로 두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셈이죠. 하여튼, 소설을 쓴답시고 첫장째 원고지를 식탁 위에 내어 펼칠 때마다 나를 긴장시키고 짜증나게 하는 것은,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반드시 끝맺으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어요. 그건, 독자들의 요구이기도 했고, 소설 형식 그 자체에 내장된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네가 시작하고 벌여놓은 이야기를 끝맺으라는 그 압력은, 이야기꾼인 내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군요. 삶이 늘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소설에서만은 왜 이토록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요? 두세 살 먹은 어린애들도 자신이 하던 놀이를 중도에 그만둘 줄 아는데 ……. 가능하다면 나는 그것을 시도하고 싶어요. 이야기의 중도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새로운 소설을."
여기에는 기존의 소설에대한 야유와 비난이 아주 선명하게 들어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의 야반도주에대한 답과 다름없을 것이다. 장정일은 비난과 야유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머리짐작으로 내뱉어놓은 것관 다르다. 장정일의 비난의 경험 후에 나온 것이며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사람으로서 그의 그 비난이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그는 어느 소설 속에서든 반항아적 면모를 보인다. 참회는 없다. 탕아의 컴백홈은 그에게 없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느낌이 들곤 한다. 화자가 소용돌이 저편에서 말하고 있다는. 저편에 소용돌이가 휘몰아 들어가는 가운데에서. 그리고 그의 비난은 결코 비난에 그치지 않는다. 에서 나가 새로운 소설에 대해 말한 뒤, 영화를 하는 아들과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을 나는 엿듣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중세인들에게 첫사랑이란 없다. 완결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현대인들에게 첫사랑이란 다음 사랑을 약속하는 행위이다. 순결함으로 그것을 포장하는 것은 다음사랑의 당위를 높이는 일이다. 성사되지 않은 사랑의 의미를 내포한 첫사랑에 사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사랑엔 오로지 그 순간만 있는 것이지 다음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처음이란 모호성은 어쩔 것인가 무엇을 처음이라 하겠는가, 현대의 첫사랑은 그저 일방향적 이미지의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의 첫사랑은 장정일의 새로운 소설에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증오하여 소설에서 추방시켜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삶의 반영과 모사,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되는 소설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것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하지만 놀랍게도 첫사랑은 존재한다. 이란 영화를 예로 들면 그 영화의 여주인공은 수많은 남자들을 만난다. 계속해서 여자는 버림받는데 마지막 죽는 순간에 여자는 본다. 자신의 진정 사랑한 사람의 얼굴을.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이다. 여자는 평생을 그의 대신을 찾아 헤맸고 그때문에 많은 남자에게 버림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마지막이며, 첫사랑이 아니라 처음이라는 순수와 돌이킬 수 없음이 있을 뿐. 완전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완전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사랑은 미완의 사랑이다.
첫사랑이란 통념은 마지막에 무너진다. 나가 첫사랑의 산물, 불쌍한 산물이 죽은 아이라고 말하며 소설은 끝난다. 장정일의 글쓰기가 이 소설에 잘 들어나 있다고 나는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처음이나 두번째니 순수니 하는 의심할 수 없이 깊게 밴 인식에서의 사랑은 옳지 않다. 그런 글은 옳지 않다. 진정한 글은 마지막이되는 글이다. 순수와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할 수 있는 글이다. 완전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죽어있는 미완의 글을 나는 쓰고 싶지 않다라고 장정일은 말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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