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중세 이념과 연극의 대립
(2)민중연희의 전통과 탈춤
2. 탈춤의 양식적, 주제적 특성
3. 주제집단의 변모에 따른 변화
4. 역사변동으로 인한 탈춤의 쇠퇴
연극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종합화를 가능하게 하는 물적 토대와 배우, 관중의 세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새로운 지배이념으로 내세워 정치, 사회, 윤리적 관계를 수직적인 질서로 파악하며 상하관계의 불평등과 차별을 강조하였고 이에 따라 심성을 절제하는 아정(雅正) 아담하고 바른.
한 것이라며 고려시대의 연등회와 팔관회를 폐지하고, 새롭게 예악을 정비해 나갔다. 이러한 성리학적 사고를 가진 지배층은 자신들의 사고와 대립되는, 인간의 현실적 대립을 배우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직접 형상화하는 연극 발전의 물적 토대를 제공할 수 없었고 광대(廣大), 우인(優人), 재인(才人), 수척(水尺) 등으로 불리던 배우들에게도 우호적일 수 없었다. 『중종실록』1536년 5월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어 전문 예능인(광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정재인(呈才人) 백정(白丁)등은 본시 무항산(無恒産)한 자들로 우희(優戱)를 사업으로 하여 마을을 돌아다니며 걸량을 하니 실은 겁탈과 다름없으며, 이들은 민가에 기생하여 작해(作害)가 심하여 올해 같은 흉년에는 그 도둑질함이 전보다 더할 것이니 이들이 경내(境內)에 돌아다니는 것을 일체 엄금하라.”
김현양, 「민중연희의 전통과 탈춤의 성장」 『민족문학사 강좌』상, 창작과 비평사, 1995 재인용
당대의 배우들은 산대도감(山臺都監)이나 나례도감(儺禮都監) 등 궁중연희를 관장하는 관청에 소속되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고 민간을 떠돌면서 연행하였고 조선조 후기 산대도감이 폐지되기 전까지 관의 통제와 감시를 받아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연극사는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저층 민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발전하면서 적극적으로 민중의 인식과 정서를 반영하여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줄 수 있었다.
『탈춤의 역사와 원리』, 조동일, 홍성사, 1979
『한국 문학 통사 3』,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4
『한국 문학 통사 4』,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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