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sicko를 보고나서 - 어린 날 바라본, 그리고 현재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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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어린 날 바라본, 그리고 현재의 모습들
몇 년전의 일이다. 어느 날 정부에서 의료 민영화를 검토해본다고 했다. 의료 질과 의료 낙후의 문제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낮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의료 민영화를 검토해본다고 했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의료 민영화를 찬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료 민영화는 서민죽이기라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등장한 영화가 식코다.
10대 때 보았던 식코는 그 당시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의료민영화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라는 법칙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받아야할 의료시스템이 차별적 의료시스템이 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분명 우리같은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식코에서 보여진 미국 의료체계처럼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극단적으로 치우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거의 5년이 지난 지금, 다행스럽게 의료민영화는 없다라는 대통령의 말과 함께 아직 대한민국에선 의료민영화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어릴 때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할 때 3400원씩을 지불했다. 어떤 병명을 가지던 3400원씩. 나는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3400원을 내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와 같은 병원에서 같은 선생님께 진료를 받던 할머니는 이만원 가량을 지불했다. 어린 맘에 저 할머니는 얼마나 아프길래 이만원이나 내는걸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간호사 언니에게 물어봤다. 의료보험에 들지 않으셔서라고 했다. 도대체 의료보험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바쁜 간호사언니의 모습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쨌든 그때 처음 알았다. 진료비가 그렇게 비싼거구나라는 것을.
의료보험에 들고 있어 진료비와 약값이 크게 나가지 않았기도 했고 크게 아프지 않았던 나이기에 의료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3학년 내 나이 19살에 나는 크게 아팠다. 잦은 설사와 이상한 배의 느낌에 병원에 갔고 각종 검사를 시작했다. 궤양성 대장염이란다. 나는 희귀성 난치병 환자가 되었다. 각종 검사에도 난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일정한 정액제 요금을 내고 진료를 받았고 약을 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희귀성 난치병환자 제도라는 정부의 도움으로 내 병을 위해 먹어야하는 약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있다. 또 병원에서 받는 진찰비 또한 의료1종이라는 혜택아래 면제받고 있다.
이런 상황인지라 지금 현재 다시 본 영화 식코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현재 나는 궤양성 대장염에 걸렸기 때문에 보험에 들 수 없다. 아프기 전에 들었던 보험만이 전부이다. 가뜩이나 보험도 들 수 없는 마당에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의료민영화가 되었다면 내가 지불해야할 금액은 미국처럼 천문학적인 금액일 것이다. 내가 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아프다고 해도 혹여 과거 보험이 그때까지 유효되어있다고 해도 당신은 과거에 궤양성대장염에 걸린 전적이 있기에 보험금 지급이 거부가 된다라고 통보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료민영화가 어떤 것인지 구체화가 된 것도 있지만 그만큼 내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라 더더욱 무섭고 큰 충격이 되었다.
‘민영화’라는 단어가 무서운 단어는 아니다. 현재 이 시대는 자본주의라는 사상 아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생산과 소비활동을 한다. 보이지 않는 손 아래 세상은 조화롭게 변할 것이다. 민영화 역시 이런 사상아래 입각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이며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라는 단어가 무섭다. 이론과 사상은 단순히 이론과 사상일뿐.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생산과 소비활동을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행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생산한다. 결국 가진 자는 계속 가지고 없는 자는 여전히 계속 없다. 갈수록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탈감 아래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계속해서 발버둥만 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민영화라는 단어는 결국 가진자들을 위한 하나의 에피타이저와 같은 것이다.
사실 민영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지금과 같이 소득분배가 원활하게 되지않는 상황에서 민영화가 이뤄져서는 안된다. 또한 인간에게는 천부인권설이라는 사상아래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이란 것이 존재 한다. 이는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된다. 사람답게 살 권리의 가장 기초는 자유와 기본적인 살 수 있는 즉 건강하게 살 권리다. 의료 민영화는 이런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다. 의료 민영화 뿐만 아니다. 식코에서도 짚고 넘어간 것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것 그리고 교육하는 것 모두 다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들 중 하나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겐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만은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