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1.영화 줄거리
이탈리아에서 극악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 말, 귀도는 운명처럼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 를 만난다. 도라 에 겐 약혼자가 있지만 그 사랑을 운명이라고 생각한 귀도는 그녀와 함께 마을을 도망친다. 귀도의 순수하고 맑은 인생관과 꾸밈없는 유머에 이끌렸던 도라는 그와 결혼하여 아들 조슈아를 얻는다.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들 가족에게 닥쳐온 불행,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귀도와 조슈아는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남편과 아들을 사랑하는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면서도 자원하여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귀도는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조슈아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실은 하나의 신나는 놀이이자 게임이라고 속인다. 귀도는 자신들이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라며 1,000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탱크를 좋아했던 조슈아는 귀가 솔깃하여 귀도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는다. 두 사람은 아슬아슬한 위기를 셀 수도 없이 넘기며 끝까지 살아남는다. 마침내 독일이 패망한다. 그러나 혼란의 와중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한다. 1,00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마지막 숨바꼭질 게임에서 독일군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믿는 조슈아는 하루를 꼬박 나무 궤짝에 숨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적만이 가득한 포로수용소의 광장에 조슈아가 혼자 서 있다. 누가 1등상을 받게 될지 궁금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조슈아 앞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탱크가 다가온다.
2.내가 선호하는 이유
자신은 끌려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서 같이 따라가는 도라의 모습과 수용소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스피커로 아내가 좋아하는 오페라를 들려주는 모습은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아름답지 않은 수용소의 삶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아들 조슈아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하나의 신나는 놀이이자 게임이라고 속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귀도의 모습이야말로 스스로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삶은 그것을 아름답게 파악하고, 있는 힘을 다해 싸워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나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라서 선호한다.
3.영화속의 철학
알랭은 그의 『행복론』에서 "불행해지고 불만스러워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해주길 기다리는 왕자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분명한 것은 행복해지기를 원치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이를 만들어 가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행복해지길 원하고 이를 만들어 가는 한 작은 사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귀도는 몸이 작고 잘 생긴 편도 아니며 부자도 아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그가 하고 싶은 서점을 경여할 형편도 되지 않아 삼촌이 지배인으로 있는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한다. 그러나 그는 성실한 데다 무엇보다 타고난 재치와 낙천성으로 항상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하루하루를 스스로 만드는 작은 기쁨들로 채워 가는 능력을 가졌다. 이러한 귀도의 사람은 언제나 밝고 흥미롭기 마련인데, 바로 그것이 귀도가 도나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이된다. 도나가 귀도에게 그녀의 아버지도 항상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즉 귀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 간다. 귀도의 행복 만들기의 본질은 그가 친구 페루시오에게서 배우는 쇼펜하우어의 자기 암시법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쇼펜하우어의 자기 암시법이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을 반복하여 외우며 정신을 집중하면 이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행복도 원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알랭도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방법으로 첫째, 자기 불행을 남에게 말하지 말 것을 권한다. 슬픔은 독과 같아서, 누구나 스스로 만족해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불만에 차 있는 사람을 동저은 할망정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동정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주어진 삶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방법을 배울 것을 권한다. 불평이나 불만으로는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보여 주는 것 같은 자기 암시적 낙천성이 요구되는 이유들이다.
알랭은 비오는 날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오는 경우 사람들은 지금 비가 오고 있다, 지붕 위에서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무수한 작은 도량들이 재잘대며 흐른다. 공기는 빗물에 씻겨서 한층 산뜻하고 구름은 아름답게 뜯어 놓은 솜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행복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비는 추수를 망쳐 놓고 온통 흙탕물을 만들어 놓으며 풀밭에도 못 앉
게 한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비를 멎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를 집 안에까지 끌어들이는 결과만을 낳는다는 것이다.
알랭은 이렇듯 선도 악도 순환하기 때문에 사람은 주어진 자신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그의 삶이 아름다워진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란 이미 결정된 것 또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아름답게 파악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만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귀도의 행복 만들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소위 급진적 구성주의 라고 부르는 현대 인식론의 귀결이기도 한것이다.
참고자료: 영화관 옆 철학카페,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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