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감상문 - 영화 감상문 - 세 친구
정말 마음에 와 닿는 영화를 찾다 발견한 것이 인도영화 ‘세 친구’이다. 이 영화가 인도의 영화라 처음에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느낀 것은 정말 많고 교훈도 많은 영화이다. 자신의 진로에 방황하고 어른들이 정해주는 미래를 그대로 따라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나의 고등학교 대학 진학을 걱정하던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스무 살은 아이들에게는 자유의 시작이지만 어른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 시기는 가능성의 시기라고 본다고 영화에서는 나와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지만 인도의 교육방식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것 없었다. 수많은 길을 포기하고 하나의 길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참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도 조기교육부터 시작해서 대학의 진로 꿈의 결정까지 어른들의 선택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능성은 어디로든 열려 있다고 말해준다.
무소속, 삼겹, 섬세. 이 세 친구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평범한 스무 살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평범하다’는 표현에 낯설음을 느낄 지도 모른다. 여기서의 평범함은 다른 이들이 달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느새 빼앗기고 마는 특권과도 같은 것이다. 이들 중 그 누구도 남들 다 가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가난하고 무력하다. 무소속은 꿈은 있어도 앞날은 없는 수많은 만화 지망생 중 하나이다. 삼겹은 아무 것도 배우고 싶지 않은 비만이다. 섬세는 사내답지 못한 여린 성격에 미용사를 꿈꾼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한 번도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학생 이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거나 다른 이들에게 치이고 만다. 이들은 모두 건강한 일상인이 되어야만 하는 젊은이들인데, 어느 순간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소외시켰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듯 담담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보통 사람을 불구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것이 없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졸업식이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선생님의 차를 부수는 학생들의 모습은 졸업보다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한다.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학생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독단은 우리나라의 옛날 학교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 강도가 심할 수도 덜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경험했을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난 기쁨은 광란과도 같은 졸업식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에 끼어들지 않는 세 친구가 터덜터덜 걸어 나와 비디오방으로 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졸업은 더욱 고된 대학의 진입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삼겹은 먹는 것 이외에 어떤 것에도 자신이 없고,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다. 행동도 누리고 성실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첫 아르바이트였던 주유소에서 해고당한다. 마음껏 먹고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비디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하지만, 그곳에서도 쫓겨나고 만다. 아무런 의욕 없이 그저 먹기만 한 결과로 얻은 것은 군 면제 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력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소속은 만화가를 꿈꾸는 청년이다. 찾아간 만화가 사무실 역시 소통이 불가능한 일방적인 공간이다. 서로가 자유롭게 소통해야 하고, 창의성을 필요 하는 곳인데 , 그곳 역시 다른 공간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만화가 지망생의 열정과 희망에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 무소석은 일찍이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잠재성을 발휘할 기회를 모두 잃고 만다. 그의 꿈을 이뤄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 했던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만 통용되는 공간이며, 계급이 낮을수록 폭력에 노출된다. 학생시절 교사에게 맞았던 귀가 고참의 무차별적 폭력으로 완전히 상하게 되는 것도 하나이다. 불구가 되어 버린 것은 그의 청력뿐만이 아닐 것이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다양한 감수성을 가진 소년들은 같은 표정의 말없는 어른이 되어 간다. 군대라는 집단의 폭력성은 영화에 드러나 있다. 그 또래의 청년 중 그러한 폭력성으로부터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입대에 대한 의가사 제대 후, 귀가 들리지 않아 두리번거리며 길거리를 헤매는 그의 모습은 군대를 다녀온 내가 보기에도 정말 우울한 사회를 보여줬다.
세인의 모습 역시 내가 보기엔 아주 낯선 모습만은 아니었다. 섬세하고 조용한 성격에, 미용사를 꿈꾸는 세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단지 동네 건달들로부터 당한 폭행만은 아니다. 그의 상처 입은 모습에서,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파란색이라고 주입받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성적 역할의 강요를 쉽게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좀 나약하긴 해도 분명 꿈을 가진 그는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군대를 가려 애쓰지만, 정신 병력으로 인해 그마저 좌절되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 왔다.
세 친구 중 그 누구도 가족과 사회로부터 쓸모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한다. 그들은 늘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하는 패배자이다. 영화 속의 ‘세 친구’들은 나약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해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지만 그것을 배우고 따라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영화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울하고 다운되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사회의 모습이 억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도 영화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스무 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세 친구’의 방황을 그러한 긍정을 위한 전단계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한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놀란 것 이라면 내가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진학 할 때 느껴왔던 점을 우리나라의 영화도 아닌 인도의 영화에서 그대로 나타 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순된 사회모습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성장하는 세친구들을 보면서 문득 나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도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 고등학교에서 입시를 위한 공부만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도 실현하지도 못했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이렇게 자신의 생각보다 보다 좋은 대학을 진학해야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 된 우리나라의 모습은 이제 꿈을 실현시키기 매우 어려운 나라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게 되었다.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의 여운은 내가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 같고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을 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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