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디칼리즘의 특징
생디칼리즘은 19세기말 프랑스에서 태동한 노동운동 노선으로서, 그 이념적 지향점과 이를 위한 투쟁 및 조직전략의 원형은 이 시기 프랑스 노동운동이 확립시켰다. 당시 프랑스 생디칼리즘이 표방했던 노선은 노동자주의(ouvri risme), 비정치성, 그리고 직접행동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Lorwin, 29∼36).
생디칼리즘의 특징은 첫째, 생디칼리즘은 노동계급 이외의 어떠한 사회세력과도 제휴하지 않고 노동계급의 배타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영역, 모든 목적의 투쟁을 오로지 노동자들만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전개할 것을 표방했다. 둘째, 생디칼리즘은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표출했다. 셋째, 노동자주의와 반정치주의는 생디칼리스트들로 하여금 노동계급의 직접행동을 통한 자본주의체제의 해체를 지향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프랑스 생디칼리즘은 본질적으로 혁명적 노선을 추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서 살펴보듯이 생디칼리스트들의 선언적인 주장과 구체적인 실천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었다.
(2) 생디칼리즘 성장의 역사적 배경
로윈(Lorwin)은 프랑스에서 혁명적 생디칼리즘이 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으로서 다음 요인들을 지적한다(Lorwin, 36∼40).
첫째, 19세기 프랑스 산업자본주의는 대단히 완만하게, 또 산업이 집중된 특정 산업지대를 형성하지 않으면서 중소규모의 공장이 지배적인 형태로 성장했다. 클랩햄의 표현대로 "프랑스는 결코 산업혁명을 겪지 않았다"(Clapham, 53).1)
둘째, 이처럼 중소규모의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프랑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다분히 억압적이며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했으며, 노동운동에 대한 이들의 이해 수준 역시 대단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자본가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점진적이고 타협적인 개선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변혁노선에 경도되도록 이끌었다.
셋째, 프랑스대혁명을 통해서도 결코 완전히 불식시킬 수 없었던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은 평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급진적인 욕구를 강화시켜 주었다.
넷째, 노동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노동자 독자주의(ouvri risme)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다섯째, 대혁명 이후 19세기말까지 프랑스에서 거의 "일상화"되었던 혁명은 사회변혁의 수단으로서 혁명을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게 하였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자 해방을 위한 파국에 거의 맹신적인 기대감"(Lorwin, 28)2)을 갖도록 했다.
여섯째, 노동조합 전국조직이 CGT로 통합되었던 1902년까지 사회주의 정치조직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정당조직의 이와 같은 분열은 정당과 노조간의 유기적 협력체체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저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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