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12.2~1891.3.29)
파리 출생. 1878년 파리의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앵그르의 제자 H.레만의 지도를 받다가, 다음해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브레스트의 해안에서 병역을 마쳤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고전 작품을 연구하고 소묘에 힘을 쏟는 한편, 셔브뢸, 헬름홀츠 등의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1881년경 들라크루아의 작품의 색채대비와 보색관계를 해명한 글을 발표하여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이론을 창작에 적용하여 점묘(點描)화법에 의한 최초의 대작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Une Baignade, Asnieres》(1883∼1884)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은 1884년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하였으나 앙데팡당전(展)에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일을 인연으로 평생 화우(畵友) P.시냐크와 사귀게 되었다.
1885년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제작하여 다음해에 열린 인상파 최후의 전람회에 발표하였다. 이것은 전작(前作)의 수법을 한층 더 발전시켜 순수색의 분할과 그것의 색채대비에 의하여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밖에 《포즈를 취한 여인들 Les Poseuses》(1888) 《기묘한 춤 Le Chahut》(1889∼1890) 《화장하는 여인》(1890) 등의 작품이 있다. 모두 인상파의 색채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파가 무시한 화면의 조형질서를 다시 구축한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으며, P.세잔과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염성 후두염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파리에서 요절하였다.
조르주 피에르 쇠라
19세기에 미셸 외젠 슈브뢸(Michel Eugene Chevreul)과 오그던 루드(Ogden Rood), 다비드 주터(David Sutter) 등의 과학자인 저술가들은 색과 광학 효과, 지각에 대한 논문을 썼다. 헤르만 폰 헬름홀츠나 아이작 뉴턴 등의 과학적 발견도 비과학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되었다. 슈브뢸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했을 것인데, 그가 원색과 중간색의 색상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슈브뢸은 오래된 태피스트리들을 복원한 프랑스 화학자이다. 태피스트리들을 복원하면서 슈브뢸은 올바르게 어떤 부분을 복원하는 단 한가지 방법은 없어진 울(양모로 만든 섬유) 주위에서 색상들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주변의 염료가 무엇인지 모르면 정확한 색상을 얻을 수 없었다. 슈브뢸은 두가지 색이 살짝 포개지거나 매우 가깝게 병치된 것이 멀리서 보면 다른 색깔로 보이는 효과를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현상의 발견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점묘화 테크닉의 기초가 되었다.
삼원색: 노랑, 파랑, 빨강
2차색: 주황, 녹색, 보라
중간색: 주홍색(Vermilion), 금색 등
슈브뢸은 또한 관찰자가 한 색을 본 뒤에 정확히 반대되는, 보색의 잔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붉은 색의 사물을 본 뒤에는 원래 사물에서 녹색 잔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보색(예를 들어 빨강에는 녹색)의 잔상 효과는 망막의 지속성 때문이다. 색들의 상호작용에 흥미 있어한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림에 보색을 강하게 사용한다. 슈브뢸은 묘사할 물체의 색을 칠하기만 하지 말고, 조화를 얻기 위해 색상을 추가해 알맞게 조정하라고 예술가들에게 조언했다. 슈브뢸이 언급한 조화를 쇠라는 정서라고 불렀다.
그림에 이용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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