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 고요한 폭풍과 내적논리
*이석훈이 출간된 당시 시대적 배경
-조선 사회 암흑의 시대
193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체제가 강화되기 시작하자 더욱 고통스런 착취와 굴종의 상황에 접어 들게 되었다. 일본은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지는 군국주의의 확대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정책을 전환하고 내선 일체론이라는 새로운 지배 이념을 내세웠다. 1935년 계급문학운동을 주도해 온 조선프로연맹의 강제 해체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체제 강화 과정을 말해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치 사회적 이념과 사상을 제거하기 위한 사상 탄압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는 문학과 예술을 통해 추구해 온 민족의식,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이념과 반제국주의적 사상에 대한 일본의 탄압이 더욱 강화되었다.
일본이 내세운 내선일체론은 식민지 한국에 대한 동화 정책으로서 획책된 것이다. 이 새로운 지배 논리는 식민지 지배 체제에 예속되어있는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한국인들이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조작된 식민주의 담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 대륙의 침략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한국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할 필요가 생기자, 그들이 시행해 온 식민지 차별 정책을 이 같은 기만적인 동화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일본은 내선일체론의 통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이른바 황민화 정책을 한국 사회에 강요하였다.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일본 천황의 신민이 될 것을 강요하면서 신사 참배는 물론 황국 신민의 서사를 일상적으로 체장하도록 요구하였다.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기 위해 1938년 지원병제도를 확대 강행하였으며, 1939년에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식 성명을 쓰도록 창씨개명제를 발동시켜 한국인의 민족적 뿌리를 말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교육령을 개정하여 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상용하도록 강요하였다. 1941년 이후에는 한국어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여 한국어 신문과 잡지를 모두 폐간하게 함으로써, 한국 사회는 암흑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 여러 대응 방법 등장
-이석훈의 동양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한 친일을 에 인물과 관련하여
보자.
식민주의를 대하는 한국문학의 대응방식은 논리상 세 가지의 형태가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을 통해 내선일체론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이 있었고, 소극적으로 침묵하면서 문학 활동을 포기하는 대신 현실을 인내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리고 내선일체론에 동조하여 황민화에 동참하는 방법도 가능하였다.
이석훈은 식민에 협력한 소설가로 이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석훈의 에는 박태민이라는 소설가가 등장한다. 주인공이자 내포작가인 박태민은 조선문단에서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늘 열등의식에 싸여 있었다. 그런 그가 자발적으로 친일문인으로 변신한다. 그 계기는 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강연단의 일환으로 함경선쪽 문인으로 자원하면서부터다. 열등의식이라는 정상적인 상태가 친일로 포장되는 것과 비례하여 다음과 같이 정신분열적 증상을 보인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고 고뇌하고 있었다. 그는 동경에 있는 어떤 작가처럼 신체제라고 해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창작태도를 바꾸지는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이 나라에서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거친 시대의 폭풍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생활해서는 안 되었다. 의식적으로 시대를 호흡해야 했다. 먼저 소승적인 민족적 입장을 일단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높은 대승적 지성과 예지가 필요한 것이다. 박태민은 깊은 회의 속에 방황했다. 의식은 분열하고 다투기만 하고 이렇다 할 결말에 도달할 수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박태민은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이다. 그의 친일 협력은 깊은 고뇌의 결론으로서의 협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학습된 수동적 협력이다. 함흥에 도착한 네 명의 문인들은 관공서에 인사를 다니면서 친근해진다. 여기서 제국대학 출신 마키노의 탈민족 대동아의 이론이 텍스트화 된다. 이것은 철학과 세계관으로 포장된 일본패권의 논리였다. 마키노의 고향은 일본 교토이고 인종상 일본인이다. 하지만 함경도 성진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자란 그는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주장하면서, 태어나 자란 곳이 조선이기 때문에 조국 일본을 초월했다는 주장을 편다. 마키노의 주장은 조선인 역시 조선을 초월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대동아공영권의 식민주의를 강화시킨다. 이처럼 대동아식 세계주의의 흔적은 뜻밖에도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제정러시아의 장군 출신 키르사노프가 함경에서 양복점을 하고 있다는 장면 역시 단순한 배치가 아니다. 순진한 키르사노프의 입에서 “저는 나라가 없습니다. 소비에트는 적이예요. 20년 동안 큰 고통 없이 살아온 일본이 내 조국입니다”라는 발화가 등장한다. 당연히 이 발화는 주인공의 발화라기보다는 작가의 발화라고 해야 한다. 즉, 대동아공영권은 그만큼 조선의 작가를 유인하는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 위에서 살펴본 결과, 소설 속 주인공 박태민은 이석훈을 대변한다고 보기에 적합하다. 그렇다면 이석훈의 생애와 관련하여 친일의 내적논리를 엿볼 수 있 지 않을까.
*이석훈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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