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러-일 영토분쟁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 정리
이곳의 분쟁은 제정 러시아가 19세기 초 사할린과 쿠릴 열도까지 남하했을 때 촉발됐다. 결국 제정 러시아와 일본은 1855년 시모다 조약을 맺고 4개 섬은 일본 령으로, 나머지 쿠릴열도는 러시아령으로, 사할린은 양국이 공유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제정 러시아는 1875년 군사력을 동원해 사할린을 모두 차지하는 대신 쿠릴열도를 일본에 내줬다.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다시 북위 50도 이남의 남부 사할린을 빼앗았다.
소련은 2차 대전에 참전하면 사할린과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인정하겠다는 미국과 영국의 제의를 받고 종전 직전 사할린과 쿠릴열도 전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1951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이 지역을 소련 영토라고 추인하지 않았다. 거기엔 공산주의 확산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1956 년 하토야마 이치로 일본 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소련은 평화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을 양도할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일본이 소련의 제의를 수용하면 오키나와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1960년 미-일 신안보조약과 19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은 소련의 반발을 더욱 키웠다. 소련은 1978년 "4개 섬은 소련영토이므로 일본에 인도할 수 없다"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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