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파동 OilShock
※ 오일쇼크
오일쇼크란 원유 값이 급등하여 전 세계 각국에 경제적 타격을 준 석유파동을 말하며,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2차례의 석유파동은 각각 1973과 1979년에 일어났다.
※ 욤키프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1973년 10월 5일 이집트의 기습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축제일인 욤키푸르(사죄의 날) 이었다. 이집트군의 병력은 75만, 무기들은 탱크 32,000대, 소련제 미사일(SA-6) 까지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병력은 이집트군의 3분의 1도 안됐고 무기들도 이집트군의 절반도 안됐다.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17개 여단이 전멸되었다. 이때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대대적 지원을 해주었다. 이 욤키푸르 전쟁에선 소련이 35억 달러를 아랍국에 그리고 미국은 22억 달러를 이스라엘에 쏟아부었다. 또한 미국은 30일간 정도 포위됐던 이스라엘에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무려 5,566번의 비행 수송 작전을 펼쳤다. 미국의 지원을 등업은 이스라엘은 반격에 나섰고 비교적 허약한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집중 포격했다. 골란 고원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 탱크 867대, 차량 3,000대 이상을 파괴했다.
유류파동
위 전쟁으로 인한 제1차 석유파동이 발생
※ 제1차 석유파동
1973년10월 제4차 중동전쟁발발이후 페르시아 만의 6개 산유국들이 가격인상과 감산에 돌입,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두바이유) 고시 가격은 4달러를 돌파했다. 74년1월엔 11.6달러까지 올라 2∼3개월 만에 무려 4배나 폭등했다. 이 파동으로 74년 주요 선진국들은 두 자릿수 물가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한국의 경우, 1973년3.5%였던 물가상승률은 1974년24.8%로 수직상승했고, 성장률은 12.3%에서 7.4%로 떨어졌다. 무역수지적자폭도 크게 확대(10억달러→24억달러)됐다.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에너지수요가 많은 중화학공업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1975년 성장률은 6.5%로 더 떨어졌고, 물가는 24.7%의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후폭풍은 2년간 지속됐고, 1976년에서야 비로소 경제는 정상을 되찾았다.
1차 유류 파동 당시에는 1개월 만에 국제유가가 약 3.9배로 올랐고 한국의 환율도 21.9% 올랐다. 경제성장률은 3%선으로 급락했다.
※ 2차 석유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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