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의 자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전적으로 노동일의 길이에 좌우되는 반면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기술적 과정과 사회의 구성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그래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특수한 생산양식을 전제로 하며, 이 생산양식은 그 방법이나 수단. 조건과 함께 자본에 의한 노동의 형식적 포섭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고 육성된다. 그러다가 이 형식적 포섭대신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 나타난다.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양적 변동
노동력의 가치는 평균적인 노동자에게 일상적으로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에 따라 정해진다. 이생활수단은 비록 형태는 변할지 모르지만 그 양은 알정한 사회의 일정한 시기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불변적인 크기로 다루어 질 수 있다. 변하는 것은 이 양의 가치 뿐이다. 그 밖에 또다른 두가지 요인이 노동력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관여한다. 하나는 생산양식에 따라 변하는 노동력의 육성비용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력의 자연적 차이 이다.
노동력의 가치 또는 가격의 임금으로의 전화
상품의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품생산에 지출된 사회적 노동의 대상적 형태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가치의 크기를 무엇으로 측정하는가?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크기를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12시간 노동일의 가치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12시간의 노동일 속에 포함되어 있는 12노동시간에 의해서이다.
‘노동의 가치와 가격’ (또는 ‘임금’)이라는 현상상태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본질적 관계, 즉 노동력의 가치 및 가격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모든 현상상태가 그 배후에 숨겨진 배경과는 구별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현상형태는 일상적인 사유형태로서 직접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재생산되지만, 그 배후의 본질은 과학을 통해서만 비로소 발견될 수 있다. 고전과 경제학은 사물의 진상에 가깝게 접근했으나, 그것을 의식적으로 정식화하지는 못하였다. 고전파 경제학이 부르주아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노동력의 판매는 언제나 일정한 시간 동안 이루어 진다. 그래서 노동력의 하루가치나 1주일 가치 등이 그대로 전화한 형태가 ‘시간급’ (일급 등등)이다.
성과급은 시간급의 변형이며, 이는 시간급이 노동력가치(또는 가격)의 변형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과급에서는 얼핏 보면 노동자가 판매한 사용가치가 그의 노동력기능인 살아 있는 노동이 아니라 이미 생산물을 통해서 대상화되어버린 노동인 것처럼 보인다.
자본의축적 과정과 단순 재생산
축적의 첫째 조건은 자본가가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고 또 그를 통해 획득한 자본의 대부분을 다시 자본으로 전화시키는 일을 완수한다는데 있다. 자본이 그 유통과정을 정상적인 방식으로 통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은 스스로의 진행을 통해 노동력과 노동조건의 분리를 재생산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노동자의 착취조건을 재생산하고 영속화한다.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자본가에게는 자신의 치부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력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연속되는 과정으로 (재생산 되는 과정) 고찰하면 그것은 단지 상품이나 잉여가치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관계 그 자체 (자본가, 다른한편은 임노동자)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사용되는 것(즉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재전화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자본의 축적이라고 일컫는다. 자본을 ‘잉여가치의 생산에 새롭게 사용되는 축적된부 (전화한 잉여가치 또는 수입)으로 표현하고 또 자본가를 ’잉여생산물의 소유자‘로 표현한다. ’현존하는 자본은 모두 축적된(또는 자본화한 ) 이자이다‘라는 표현은 똑같은 내용을 형식만 달리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자는 잉여가치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결코 고정된 크기가 아니라 탄력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잉여가치의 수입과 추가자본 으로의 분할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는 사회적부의 한 부분이다. 현재 사용 중인 자본의 크기가 일정하더라도 거기에 결합되는 노동력과 과학 . 토지(토지는 경제학적으로 인간의 도움없이 천연적으로 주어진 모든 노동대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가 이 자본의 탄력적인 힘을 이루고 있어서 이들 힘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본에 그 크기와는 별개의 영향력을 허용 한다. 한편으로 노동자는 사회적 부가 비노동자의 향락수단과 생산수단으로 분활되는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오직 운이 좋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부자의 ‘수입’을 희생시켜서 이른바 ‘노동기금’을 확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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