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 유럽 단일시장에서 오늘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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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나의 유럽 유럽 단일시장에서 오늘날까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나의 유럽」
유럽통합의 역사 - 유럽단일시장에서 오늘날까지
1. 유럽 단일 시장의 출범
유럽 통합의 진전은 1980년대가 되면서 다소 정체되었다. 1979년에 집권한 영국의 대처 총리는 유럽 통합에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유럽이사회에서 공동농업정책(CAP)에 대한 불만과 EC에 대한 영국의 재정 분담금 문제를 제기하면서 독일, 프랑스 등 다른 회원국들과 갈등을 빚었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소련과의 냉전적 갈등이 고조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국가 간의 입장 차이도 생겨났다.
지지부진했던 유럽 통합의 진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1985년 5월 미테랑 대통령이 유럽 통합의 새로운 조약을 위한 국가간 회의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유럽 통합의 움직임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7년에 체결된 로마조약을 개정하고 공동시장 완성을 위한 회원국 간의 정치적 협력을 체계화할 단일 유럽 의정서(SEA: Single European Act)의 제정을 위한 마지막 정부간 회의(IGC: Intergovernmental Conference)가 1985년 9월 9일 룩셈부르크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유럽 단일 시장을 위한 합의안이 최종적으로 마련되었으며, 이듬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정식으로 조인되었다.
단일유럽의정서(SEA)로 불리는 이 단일법은 유럽에서 인력, 상품, 자본, 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경 없는 공동체의 창설을 목표로 삼고 1987년 7월 1일부터 발효되었다.
2. 통화동맹과 단일 화폐
단일 시장 출범 이후 유럽공동체는 보다 심화된 통합의 형태인 통화동맹(monetary union)을 향해 나아갔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규정한 유럽 단일 시장이 통화동맹으로 나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단일유럽의정서 이후 유럽은 소련 및 중동유럽 국가의 몰락, 동독의 붕괴와 독일 통일의 가능성 증대로 상황이 격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유럽의 정치질서를 변혁시키는 일이므로 영국의 대처나 프랑스의 미테랑 모두 이러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독일은 자국의 통일과 유럽 통합의 진전을 연계시킴으로써 이웃국가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 통합이 보다 심화되어 공동체 국가 간의 연계가 더욱 강화된다면 그 속에 포함된 독일은 결코 다른 회원국들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러한 독일의 주장은 1989년 12월 유럽이사회에서 수용되었다. 이와 함께 1990년 12월 로마에서 통화동맹에 대한 국가 간 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3. 공동체에서 연합으로: 마스트리히트 조약
정치동맹과 관련된 다양한 안들이 제기되면서 각 국가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웠지만, 결국 조정과 타협을 거쳐 1991년 12월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린 유럽이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흔히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불리는 ‘유럽연합조약(Treaty on European Union)이 체결된 것이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체결로 유럽 통합은 ’공동체(community)‘에서 연합(union)으로 질적인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유럽연합은 룩셈부르크에서 제시한 안에 따라 경제통화동맹(EMU)으로의 전환을 통한 경제적 통합의 완성과 함께, 공동 외교 안보 정책과 내부사법 분야에서의 협력을 통한 정치적 통합의 실현이라는 세 가지 핵심적 사항으로 정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