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무엇인가
서론
나는 중 고등하교 학창시절 ‘과학’이란 과목은 그냥 친구들과 떠들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과학사’라는 교양과목을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여러 분야를 공부 해 볼 수 있었던 중 고등학생 시절은 대학입시인 음악에만 집중을 했었는데 이제 전공 공부만을 하다 보니 이제야 중 고등학교 시절이 후회가 되었다. 특히 과학 분야 쪽에서 기초도 모르는 내가 바보 같았고, 과학을 공부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과학사’ 수업에서 이렇게 과학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날 까지 왔다. 처음 과학사 수업을 들을 때 나는 살짝 위축 되었었다.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시면서 강의에 대한 내용을 질문 하셨을 때 나는 모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중간시험대신 조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때도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말 막막했는데 좋은 조원들과 덕분에 즐겁게 발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발표 역시 성공적으로 마쳤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공부 할 수 있었다. 이 때 상대성이론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재밌었고 흥미로웠고 상대성이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가 기말시험 대신에 쓰게 된 이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상대성 이론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 보고서를 준비 하면서 상대성이론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고 실증주의 과학관과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을 비교하고 이 과학관을 적용하여 상대성 이론에 한층 더 깊이 생각해 보려한다.
본론
실증주의
실증주의는 일반적으로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태도를 거부하고 관찰이나 실험 등으로 검증 가능한 지식만을 인정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적 태도로 폭넓게 나타난다. 하지만 고유한 의미에서는 19세기 후반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나타난 철학의 한 경향을 가리킨다. 실증주의는 어떤 사실이나 현상의 배후에 초월적인 존재나 형이상학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을 반대하고,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실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사실들 간에 성립하는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 자체로 해명하려고 한다. ‘실증주의’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1760~1825)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증주의를 철학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게 한 것은 콩트이다. 콩트 사상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과학에 대한 신뢰이다. 그는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는 실증적 연구 방법이 인간과 사회 현상에 대한 탐구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실증적 과학이 형이상학적이며 오직 사물의 본질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철학을 대신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과학의 방법을 인간 지식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실증주의라고 나타냈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을 신화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로 발전하며, 이러한 3단계가 학문뿐 아니라 각 개인의 발전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과학적 지식의 성장을 인간 역사의 진보와 동일시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실증주의는 자연과학의 비약적인 성장과 함께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실증주의’는 단지 콩트의 학설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학설에 반대하여 사실에 대한 인식만을 참된 지식으로 보고 과학적 방법을 신뢰하는 태도들을 폭넓게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실증주의는 과학의 성립과 근거에 관한 연구를 진전시키며 인식론의 영역에서도 연구를 확산시켰다. 콩트의 사상은 이른바 ‘비엔나 학파’라고 불리는 독일 실증주의 학파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실증주의 [positivism, 實證主義] (두산백과)
(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 과학으로 생각한다 p.127
비엔나 학파는 철학을 경험적인 과학과는 독립적인 선험적 탐구로 이해하려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태도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실제로 비엔나 학파는 몇 가지 핵심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학파로 규정짓기 어려운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종의 토론 공동체인 ‘모임’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 이 비엔나 모임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노이라트의 초청으로 1922년에 슐리크가 비엔나 대학의 자연철학 교수직을 맡기 위해 비엔나로 오게 된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슐리크가 비엔나에 온 이후로 시작된 학술 토론 모임이 비엔나 모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전에도 독서와 토론을 하던 활발한 지적 모임이 존재 했다. 이를 1차 비엔나 모임이라고 하는데 이모임의 정신적 지주는 철저하게 경험에 입각하여 과학 연구와 철학적 작업이 수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던 에른스트 마흐였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이론적 언술을 과학에서는 수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통 실증주의자라고 불린다. 경험과 관찰을 강조한 마흐의 철학은 논리 실증주의 과학철학을 출범시킨 비엔나 모임의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 과학으로 생각한다 p.105
다시 비엔나 모임으로 돌아와 비엔나 모임은 적어도 1922년 이후에는 슐리크를 중심으로 한 바이스만, 헤르베르트 파이글 등의 우파와 노이라트를 중심으로 한 카르납, 한, 카를 멩거 등의 좌파로 나뉠 수 있었다. 이들 사이의 견해 차이는 상당히 컸지만 적어도 경험적 방법을 근본으로 한 과학 이론이 지식의 본성이나 세계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같은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 과학으로 생각한다p.133
이들의 논리 실증주의는 흔히 어떤 주장이든 그것이 언제 참이 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는 ‘검증 원리’ 로 대표된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또한 경험으로 검증될 수 있는 유의미한 과학과 그럴 수 없는 무의미한 ‘형이상학’을 구별하고 이와 같은 논리 자체를 철학에서 몰아내려고 했다고 이해된다. 여기서 논리 실증주의는 과학 이론을 형식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과학적 설명의 본성이나 경험적 증거가 특징이론을 어떻게 수용할 만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주의
(이상욱,홍성욱,장대익,이중원) 과학으로 생각한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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