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의무정소년의 비애와 함께
- 『소년의 비애』와 함께
『소년의 비애』는 이광수의『무정』이 연재되던 1917년에 발표된 이광수의 단편소설이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만큼 두 작품에는 공통되는 사상이 두드러질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먼저 『무정』에 대해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그리고 『소년의 비애』의 등장인물들과 비교를 해보고,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을지 알아보겠다.
『무정』과 『소년의 비애』의 인물
『무정』에는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인물 유형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인물 유형이 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유는 작품의 배경이 1910년대 개화기인 것과 관련이 있다.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사회·제도·문화 전반에 걸쳐 신문물과 신사상이 유입되면서 급변하는 사회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이것이 작품 속 여러 인물들을 통해 형상화 된 것이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 하나는 여전히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여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는 부류이다. 형식의 하숙집 노파, 병욱의 부친, 칠성문 밖의 노인 등이 전자에 해당하고, 형식, 우선, 병욱, 김장로, 선형, 영채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여섯 인물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보겠다.
이형식은 고아 출신으로 일찍이 신학문에 눈 떠 교사를 하는 다분히 작가의 분신적 요소를 지닌 인물이다. 동경 유학을 다녀온 근대 지식인으로서 진보적인 사상을 가졌지만 영채와 선형 사이 즉,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가 결국 선형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데, 미국으로 가는 길에 미개한 조선인의 교육과 계몽을 적극적으로 주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형식의 친구 신우선은 대신문에 기자이다. 방탕한 면모를 있지만 재주가 있으며 쾌활한 기상을 가진 ‘악의 없는 현실주의자’로 그려진 인물이다. 우선은 형식과 마찬가지로 근대 지식인으로서 신사상·신문명을 받아들인 인물이지만, 이를 이용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병욱, 영채, 선형의 자선 음악회에 감명을 받은 후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되고 ‘나도 오늘 이때, 이 땅 사람이 되었네. 힘껏 정성껏 붓대를 둘러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공헌함이 있으려 하네.’ 라고 말한다.
김병욱은 동경 유학을 통해 신식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가장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다. 당대 전형적 신여성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병욱은 전통적 가치관에 얽매여 목숨을 버리고자하는 영채가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여 새 삶을 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김장로는 선각자로 자처하지만 겉만 흉내 뿐 정작 서양 문명의 본질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딸인 김선형은 과도기적 신여성을 대표한다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박영채는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구여성에서 신여성으로 바뀌어 가는 종전에 가지고 있던 전통적 가치관에서 탈피하여 급격히 사회변화에 적응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무정』이 이러한 다양한 인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무정』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역사 격변기의 와중에 끼어 정신적 지주 없이 방황하고 회오하며, 다만 외세지향·미래지향에의 이상과 집착으로 위안을 삼는 과도기적 인물들이며, 나약한 지식인의 당대적 전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무정의 주인공들은 봉건적 인습과 새로운 사상의 사이에서 내면적 혼란을 겪거나, 외면적으로 봉건적 인습과 맞서는 면모를 보인다. 특히 봉건적 혼인제도의 폐해를 폭로한다. 형식과 영채 모두 집안 어른이 짝을 정해주는 인습으로 혼란을 겪는다. 또한 우선은 전통적인 조혼제도의 희생양으로 그려진다. 이는 병욱의 오빠인 병국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선형이 형식과의 약혼을 파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전통적 인습에 얽매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병욱은 여성의 교육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가족, 특히 아버지에 맞선다. 아버지는 병욱이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고 시집을 보내길 원하는데, 이처럼 봉건적 인습으로 표상되는 아버지에 대하여 병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원하는 바를 표하고 실현하고 있다.
한편『소년의 비애』의 문호 신문명을 받아들인 근대 지식인이며, 난수는 전통적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다. 문호는 형식 혹은 병욱에 대응되는 면이 있으며 난수는 영채와 비슷한 면이 있다. 다만 『무정』이 민족의 계몽과 개화를 말했다면 『소년의 비애』는 이를 한 집안의 이야기로 축소해 놓고 있다. 『소년의 비애』에서 문호는 근대적 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난수의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난수의 결혼에 대해 모순성을 폭로하지만 봉건적 굴레에 부딪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또한 『무정』의 형식이 민족 계몽의지와 자신이 갈 길을 뚜렷이 밝힌데 비하여 문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몽의지를 상실하고 봉건적 인습에 머무른다. 이는 정작 본인조차도 전통적 혼인제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더 이상 이상과 계몽을 꿈꾸는 소년이 아님을 말하는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한편 난수는 문학에 재능을 보이지만 전형적인 전통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 자신의 재능을 펴고자 하는 생각이 없고 집안끼리 정하는 혼사를 하게 되는 여성이다. 문호가 난수의 신랑감이 천치임을 알고 함께 도망가자고 할 때도 난수는 놀랄 뿐 응하지 않는다. 『무정』의 영채가 병욱에 의해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바뀐 사회에 적응하게 되는 모습과 상반된다.
『무정』과 『소년의 비애』의 사상
『무정』과 『소년의 비애』를 구성하는 두 기둥은 ‘봉건적 인습의 타파’와 ‘계몽사상’이다. 봉건적 인습 타파와 관련하여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은 결혼제도의 모순과 이것의 비인간성이다. 또한 계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계몽을 위해서 남녀를 불문하고 신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몽의 범위와 전망에 있어서 두 작품은 차이가 있다. 『무정』에서는 다섯 명의 젊은 남녀가 개인적으로 개화 문명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민족의 계몽 문제로 확대하여 민족주의 사상으로 나타난다. 아래는 형식과 세 여성의 대화 장면에서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옳습니다, 교육으로, 실행으로 저들을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그러나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고 형식은 입을 꼭 다문다. 세 처녀의 몸에 소름이 끼친다. (중략) “우리가 하지요!”하는 기약하지 아니한 대답이 세 처녀의 입에서 떨어진다. (중략) “옳습니다. 우리가 해야지요! 우리가 공부하러 가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차를 타고 가는 돈이며 가서 공부할 학비를 누가 주나요? 조선이 주는 것입니다. 왜? 가서 힘을 얻어 오라고, 지식을 얻어 오라고, 문명을 얻어 오라고……그리하여 새로운 문명 위에 튼튼한 생활의 기초를 세워달라고…‥이러한 뜻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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