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문명 각국의 신화 중심
저는 신화라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많은 나라에 많은 신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까 각국의 신화가 다있더라구요. 전 그중에서도 인디언 신화에 대해서 조사를 했어요. 인디언 하면 왠지 투박하고 목석같은 얼굴에 강인한 모습이 생각되곤 하는데 신화를 읽으면서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그들이 순수하고 솔직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사실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너무도 직설적이고도 약간은 황당하고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게 묘사된 신화들이 많아서요.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건 번역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쉽게 하지 못할 말들은 신화에서는 아주 자연스레 하고 있었습니다.
신화1.엉뚱한 곳에 난 이빨-폰카오토에족
이 신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코요테입니다. 거의 모든신화에선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없이 같이 성교를 하고 생활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인디언들이 자연과 자신들을 하나로 여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여기저기서 코요테에 관련된 신화가 많은데 인디언들에게 있어서 코요테는 우리나라의 개만큼이나 친근하고 많이 볼 수 있었던 동물이었다고 합니다.
코요테가 모험을 하다가 누군가 그에게 한 사악한 마녀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마녀한텐 악한 두딸과 함께살고있었다. 그 두딸은 외모가 출중하여 함께 잠자리에 든 청년들은 많이 있었으나 한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라나 코요테는 그곳에 갔다. 두 미녀와 동침하는 것이 남자를 죽일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노파는 그가 도착하자 매우 환대를 했다. 큰 환대를 받은 코요테는 마음을 놓기 시작한다. 노파는 자신의 두딸 사이에서 코요테를 자게했다. 그때 작은 딸이 어둠속에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언니가 먼저 함께 자자고 할텐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자신도 그래야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이유는 노파는 마녀인데 자신과 언니의 질 속에 이빨을 심어놓아 관계를 맺는 남자는 그이빨들이 그의 고환을 깨물어서 조각 내버린다고, 그렇게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물건을 빼앗는다고.자신은 이제 마귀할멈의 이런 지저분한짓을 하는데 질렸으며 코요테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코요테는 언니가 먼저 관계를 요구하자 그녀의 질속에 불의 온기로 아직 따뜻한 굵고 긴막대를 집어넣었다. 그녀안의 이빨이 씹고 있었고, 나뭇조각들은 그녀 속에서 나와 코요테의 온몸에 까지 튀었다. 그는 재빨리 그의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어 이빨이 맞물리기 전, 깊숙이 찔러 넣어 언니처녀의 심장을 뚫어 죽여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노파를 칼로 죽여버렸다. 그는 동생처녀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는 따라 나섰다. 그둘은 코요테의 집을 향해 하루를 꼬박걸었다. 밤이 되자 코요테는 두사람을 위해서 덤불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처녀의 질 속의 이빨을 부러뜨렸다. 관계를 가질 때 매우 흥분하게 하는 무딘 이빨 하나만 빼고. 코요테와 그녀는 매우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서 일단 너무 놀란 것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정확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성교육이 실시된건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성이라 하면 쉬쉬하면서 남몰래 가르쳤던 것이 인디언 사회 특히 이 신화가 내려오는 퐅카 오토에족에선 이런 신화로서 성교육을 시켰던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알고 있는 처녀막에대한 신화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것은 코요테가 사람과 성교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론 코요테는 인디언들의 친구이자 적입니다. 코요테는 인디언들의 먹이를 훔쳐 달아나기도 하며, 인디언들의 가축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코요테가 친근하긴하지만 그들에게 해가 오지 않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런신화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신화에서는 좋은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서 현실에서도 그렇게 되길 기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화에 있는 주술적인 의미 말입니다.
신화2.코요테의 산딸기-크로우족
이신화는 어찌 보면 굉장히 음탕할 수도 있는 신화입니다. 각각의 이성의 성기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해는 됩니다.
어느날 코요테가 산길을 거어가던 중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들이 야생산딸기를 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을 산딸기 덤불 사이에 있는 땅속으로 숨어 들어가 자신의 성기만 땅위로 내놓았다. 곧 소녀들이 그 덤불 사이로 오게 되었다. 소녀들은 코요테의 성기가 딸기 인줄 알고 그것을 뽑으려고 시도하였다. 몇몇 소녀들은 당겨 보았고 몇몇 소녀들은 입으로 조금씩 갉아 보기도 하였다. 그때 한 소녀가 말했다. “이봐 이딸기가 눈물을 흘려.”그랬더니 다른소녀가 말하길 “아니야. 딸기 속에서 우유가 나오네.”하며 말했다. 세 번때 소녀는날카로운 돌로 이걸 잘라내ㄱ자고 말하고 날카로운 돌 조각을 찾아내어 다시 산딸기를 자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땐 이미 이상한 산딸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소녀들은 코요테의 짓임을 확신한다. 그리곤 복수를 하기로 한다. 소녀들은 옷을 홀랑벗고 요리하며서 모아둔 짐승의 피를 가지고 자신들의 몸에 칠하기 시작했다. 코요테가 항상 사냥을 다닌는 길목에서 마치 적들에 의해 겁탈당하고 나후 살해된 것처럼 보이게 엎드려 누워있었다. 곧 늙고 추한 코요테는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온몸에 피가 흐르고 있는 소녀들을 보자 그는 겁에 질렸다. 적들이 근처에 있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죽일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보기위해 소녀들의 냄새르 맡기시작했는데 소녀들은 코요테에게 방귀를 뀌었다. 코요테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서 죽은지 오래되었다고 안심을 하였다.그러자 그동안 죽은체 누워있던 소녀들이 일어나서 웃으며 소리쳤다. “이 어리석은 노인네야! 이번엔 우리가 당신을 속였어.”
인디언들에게 있어서 성이 얼마나 개방적인지 보여주는 한 예였습니다. 성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또 그에 따른 복수를 하기 위해서 발가벗고 누워있는 소녀들. 또한 여기선 정사의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정사는 아니지만, 우리의 관점 적어도 저의 관점에서 보자면 참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처녀도 아니고 소녀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처녀가 아닌 소녀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인디언들은 어린나이부터 성을 쉽고 자연스럽게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수명이 짧으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나이 보다 훨씬 성관계를 빨리 하는 것은 사실 이겠지만...
3. 신화속에 배어있는 인디언들의 성문화
전쟁의 의식처럼, 사랑의 의식에도 진지한 관심이 요구됩니다. 여러 다른 인디언 종족 가운데서의 구애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호된 시련이나 역경, 불쾌하거나 성가신 의무, 헌신을 위한 희생, 아니면 죽음까지도 사랑의 이름 아래 겪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들은 산, 별, 혹은 나무로 변한고, 동물과 인간과의 결합은 많은 부족의 전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이라는 신과 웅녀라는 곰이 결합해 단군이 나오질 않는가.그런면에서 보면 처음엔 다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문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인디언들이 사랑과 성을 논할 때, 어떤 한 주술사는 “사랑은 신성하고 성 또한 그렇다. 이둘은 별개의 것이아니다. 서로 속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도착하여 성에 대한 엄숙한 태도를 보였을 때 인디언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는 상상이 됩니다. 얼마 전에 명성황후라는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연회복을 본 궁인들이 당황하는 것이 나왔는데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선교자들의 눈에는 인디언의 언어는 저질스럽고 음탕하게 느껴졌을 테니까요. 또한 인디언들 중에는 종종 고환이나 페니스 따위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어떤 환상이나 특정한 사건 이후에 내려지는 어떤 다른 영광스런 이름과 별다를 바 없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의 시각에서 볼땐 말도 안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 문화내에선 전혀 문제될것이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려서 ‘늑대와 춤’을 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늑대와 춤’은 사람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백마리의 곰, 주먹쥐고 일어서서’등 어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이름이 붙여집니다. 우리끼리도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를 때 어떤 특정한 이미지나 사건등을 통해 그사람을 지칭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담으로 저희 분반에 손호영을 닮은 애가 있는데 그애는 오티 이후에 자신의 이름보다 손호영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그렇듯이 남자의 성기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냥 한 사물에 불과한 것이 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단지 우리의 관점에서 그들이 성적으로 난잡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성문제에 있어 덜 위선적이 었을 따름입니다. 그들은 성관계를 사랑의 행위로 보고 (우리도 그렇지만) 그것을 신성하게 생각했으나 그것을 엄숙하게 다루진 않았습니다. 엄숙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성이 난잡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좀더 자연에 가까웠고 우리보다 더 솔직하고 순수했을 뿐입니다. 동물들은 성을 숨기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과시하고 드러냅니다. 그런 것처럼 인디언들에게도 과시하고 싶은 어떤 무공세우기와 같은개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공담을 벽화로 남기듯이 의복에 자신의 구애함을 나타내기위해 남성의 성기같은 형체를 그려넣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여자 측에서 성관게를 맺고 싶지 않았다면 아무도 감히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정절은 있었으며 배신은 가벼이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 신화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티와족의 ‘정조를 지킨 아내와 여전사’라는 신화에서보면 그녀는 불성실의 누명을 써서 추방당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서 자신의 남편과 그의 전부족을 구출하기 위해 전사로 변장한뒤에 다시 돌아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관계를 했다 혹은 안했다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것이 었습니다. 단순한 껍데기 뿐의 정절이 아니라 마음까지의 내면까지의 정절이었습니다.
이런 신화들을 통해서 자연히 성에 대해 인디언의 아이들은 눈을 뜨고 지금 우리가 하는 성교육을 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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