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의 신화 평론
으로 유명한 까뮈지만, 나는 그의 저작물 중에서 가 가장 핵심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그의 세계관 자체를 이 책에 담고 있고 이방인, 페스트 등 다른 모든 소설은 결국 그의 세계관으로 본 세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다소 난해한 지적영역에서 여전히 그리고 끊임없이 다루어지는 물음... 그것은 삶과 존재에 대한 고뇌와 성찰에 담긴 모든 것들이다. 시지프의 신화 역시 그러한 원초적인 철학적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던진 삶의 부조리와 인간존재의 한계 및 현실에 대해 매우 폭넓은 지식적 테두리내에서 다루어 내고있다. 누구나가 이 책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 하나는 대부분 공통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건 바로 새로운 무엇을 밝혀내기 위함이 아닌 이미 밝혀진 것들의 타당함과 그에 내포되어있는 진리에 관해 주석을 달고 주관적 해석을 가미하는 형태로 진지하게 부조리와 실존의 심연속으로 몰입해나가는 까뮈의 문체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염세와 허무의 뒤틀림인 부조리한 삶은 진정 우리가 지각하지 않으려 하고,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싶어하는 엄연한 현실이란 점을 이 책에선 지적한다. 영원한 진실도, 영원한 거짓도, 불멸의 행복도, 끝없는 타락도 없는 삶의 다각적 몸부림...
그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며 방황하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추구, 열정, 반항, 자유... 까뮈는 바로 이러한 반항과 열정, 자유가 진정한 부조리라 정의한다. 그 길었던 사색은 바로 저 결론을 얻기 위한 인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의식과정을 논리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글이 더욱 가치있는 것은 이것이 "이론서"로 쓰여진, 이론의 언어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고뇌하고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진솔한 것이라는 점이다.
왜 살아가는가, 삶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묻는 것이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시작하는 글의 서두는 어떤 글의 서두보다도 신선하고, 또 삶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문제제기는 독자를 글의 품안으로 끌어들이기 충분한 것이었다.
삶에 대해서 가장 솔직한 인간의 진담, 그것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는 "자기 존재"를 찾는 과정 속에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를 읽으면 이방인의 모호함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를 통해 풀어내는 카뮈의 언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삶의 부조리함이 혼돈스러운 만큼, 오히려 삶에 대한 의식은 더욱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다. 시지프가 언덕에 바위를 힘겹게 올려놓고, 다시 굴러내려간 바위를 향해 기진맥진하여 내려오는 그 인식의 순간에 카뮈는 주목한다.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려고 노력하려 하지만, 죽음의 운명 앞에서 모든 것은 허망하다는 인식에 대한 사색이다. 바쁜 일상 가운데, 문득 주말의 황혼 앞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삶의 고단함과 무상함에 대한 인식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뮈는 바로 그 인식의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낯선 이방인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삶의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인식이 지나친 허무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허무주의와는 다르다. 그는 서구의 절대적 이성을 비판하면서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지성을 강조한다. 삶의 무의미함을 명찰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위대한 의식 위에, 카뮈가 명상하는 언덕의 부드러운 선과 동요되는 마음 위로 드리우는 저녁의 손길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카뮈가 말한 것처럼 허무에 이르는 것은 절대에 이르는 것보다 어렵다. 어쩌면 언덕을 내려오는 시지프의 고단함은 인간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운명에 대한 사색은 어느 골목 모퉁이에선가 멈춰버린 것 같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 사회속의 시지프..그리고 그 삶의 안에서의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가끔, 해봤자 소용도 없는 일을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소망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생각을 비겁하고 나약한 것이라 꾸짖는 사람이 있다. 바로 카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단조롭게 되풀이된다. 기상, 버스나 전철,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의 수업, 점심 식사, 취침...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월화수목금 이처럼 정해진 궤도를 따라 아무 탈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했던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런 느낌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어느 수업시간, 손짓을 섞어 가며 열심히 설명을 하고 계신 교수님의 모습을 바라본다.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스쳐 지나가고, 보이는 거라곤 벙긋거리는 입과 위아래로 흔들리는 손뿐이다. 마치 아무 의미도 없는 무언극을 보는 것 같다.
바로 이 순간, 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낯설음을 느낀다. 햇볕이 따뜻한 어느 날, 학교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잔디위에서 뛰노는 꼬마들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밝은 햇살 아래 이리저리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그 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정지해 있다. 갑자기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외톨이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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