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의도 덕론 개념 이해와 실천이성비판
칸트의 도덕론의 개념들에 대한 기초적 설명과 에 대한 간단한 소개
1.
텍스트의 내부로 들어가기에 앞서, 몇 가지 예비적인 설명이 필요할 듯한데, 첫 번째는 과 의 비판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은 ‘순수이성’을 비판하지만, 은 ‘실천이성일반’을 비판하고 있다. 실천이성일반이라는 것은 ‘순수실천이성’과 ‘경험적 실천이성’을 아우르는 개념인데, 칸트가 실천이성일반을 비판하는 이유는 뒤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순수하다는 것은 경험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경험적인 것이 섞여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선험적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순전히 똑같은 개념은 아니다. 세 번째로 실천적이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존재해야만 하는 것’으로서의 당위에 관계하는”이라는 의미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실천적 인식만으로 의지를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실천적이라고 해서 모두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세상에 없는 꽃 품종을 만든다고 해보자. 그것은 존재해야만 하는 것과 관계한다는 의미에서 실천적이지만, 어떤 유전자 배열을 조작하면 그러한 품종이 만들어진다는 이론적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론철학에 속하는 것이지 실천철학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지금부터 언급되는 실천의 의미는 좁은 의미에서의 실천이다. 한편으로 비판의 의미는 어떤 것을 나누어 그 각각의 부분의 의의와 제약과 한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칸트에게서 비판이란, ‘이성능력일반’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경험 너머에 있는 ‘형이상학일반’의 가능이나 불가능, 그러니까 형이상학들의 원천, 범위, 한계를 규정하는 것을 뜻한다.
2.
그렇다면 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왜 실천이성일반인가? 이 아니라 왜 인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의지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의지는 원리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이다. 달리 말해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령 ‘금연’이라는 원칙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우리는 흔히 금연하면 의지력이 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의지력이 약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왜 이 아닌가? 경험과 무관한 순수실천이성만으로 도덕적 의지를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규정한다는 것은 내용을 부여한다는 것인데, 이는 의지에는 내용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도덕적 행위의 주체는 의지다. 더 엄격히 말하자면 순수실천이성에 의해 규정되는 의지가 바로 도덕적 행위의 주체다.
3.
앞서 순수실천이성만으로 의지를 규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칸트 윤리학의 기초가 순수실천이성이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실천이성비판의 대과제는 이 순수실천이성을 해명하는 것이다. 칸트는 분석론에서 순수실천이성의 원칙들과 대상개념, 동기들을 논하면서 그 작업을 하고 있으며, 변증론에서는 최고선, 그러니까 덕복일치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방법론에서는 도덕교육론을 얘기하고 있다.
4.
먼저 순수실천이성의 원칙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의지를 규정하는 원리에는 준칙과 법칙이 있다. 준칙은 주관의 의지에 대해서만 타당하므로 주관적이고, 법칙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서 타당하므로 객관적이다. 당연히 준칙과 법칙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지를 규정하는 최고의 도덕원칙은 준칙과 법칙의 일치를 무조건적으로 명령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것을 칸트는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형식만 있고 내용이 없는 이유는 내용은 경험적이고 우연적이기 때문인데, 내용이 들어가면 그건 보편적 윤리학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지의 자율의 형식적 원리’다. 자율은 법칙을 스스로 정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조건이 없는 정언명법으로 표현되는데, 예컨대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와 같은 식이다. 타율은 법칙을 대상으로부터 정립하는 것을 말하고, 그래서 조건이 있는 가언명법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남에게 뭐라도 얻으려면,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와 같은 식이다. 즉 ‘의지의 자율’이라는 것은 의지가 의지를 스스로 규정한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이성의 자기입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명제는 선험적 종합명제다. 명제와 판단은 비슷한 의미이며, 그 명제는 경험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선험적이며, 술어개념이 주어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종합명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험적 종합명제로서의 도덕법칙의 가능성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칸트는 도덕법칙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답한다. 도덕법칙은 이성에게 단적으로 그러니까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은 채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성의 사실’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으로 순수실천이성의 사실이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가령 살인자도 “살인해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법칙을 의식하고, 사기꾼도 “남을 속이면 안 된다”라는 도덕법칙을 의식할 것이다. 이렇게 의식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하지 않는다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테니까.
6.
,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9
, 사카베 메구미 외 지금,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b, 2009
, 김정주 지음, 철학과 현실사, 2009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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