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욱론
Ⅰ. 작가의 생애
송욱은 1925년 4월 19일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서 아버지 송양호와 어머니 김동성 사이에서 2남 5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송욱은 1938년 재동보통학교를 마치고 같은 해 4월 경기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이무렵 집안에서 한문 독선생과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국인 영어 선생까지 초빙하여 공부를 했는데 그의 부친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송욱이 영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동양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어렸을 때에 이런 한문 교육이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일본 가고시마 제 7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경기중학 4학년에서 중퇴한다. 경기 중학과 제 7고등학교를 함께 했던 민석홍 교수에 따르면 송욱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한다. 그는 중고교의 청소년기로부터 이미 철학이나 종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일본이 밀리게 되자, 일본에 유학중인 많은 한국 학생들이 서둘러 귀국했다. 송욱도 그들과 함께 귀국하여 경성제대 의학부로 편입하게 되나,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다가 마침내 1946년 9월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로 옮겨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을 얼마 앞두고 신인발굴을 위한 추천제도가 있었던 『문예』지에 , 등으로 ( )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게 된다.
6.25전쟁이 한창 치열했던 1952년 부인 인봉희 여사와 결혼을 올린 후, 휴전이 되던 1953년 6월 『문예』초하호에 송욱은 시 작품 과 동지 11월호에 평론 < 론>을 발표하면서 전쟁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문단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54년 10월 모교인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안정된 생활 속에 그는 『사상계』를 비롯하여, 『현대문학』『신태양』『자유공론』등에 장시 및 와 여타의 시작을 연달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평론 을 『사상계』에 연재하기도 했다. 『하여지향』은 그의 이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여 많은 문제성을 던졌다. 또한 1963년 『사상계』에 1년여 연재한 평론 이 간행되었는데 이것은 우리 현대 비평사의 하나의 전환점을 이룩한 것이다. 으로 한국일보사에서 주관하는 출판문화상 저작상, 서울특별시 주최의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1971년 제 3시집 『월정가』를 간행하는데 이는 그의 제 12시집과는 다른 새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기는 그의 학문적 기반이나 문단에서도 안정되고 원숙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이후 1975~77년까지 3년간 인문대 학장직을 맡게 되면서 1970년대 초반까지 펼쳤던 활동에 비해 시창작과 학문 활동이 다소 위축되게 된다.
1980년 봄 그의 생일이 임박한 4월 16일 자택 서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만 5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평소 혈압이 놓아 항시 조심하는 편이었으나, 불의에 닥친 죽음은 어떻게 피할 수가 없이 시작과 학문에 대한 많은 미련을 남긴 채로 그는 떠난 것이다.
Ⅱ. 송욱의 시세계
1. 초기 시: 몸의 탄생과 주술적 언어- 상징적 순수의 공간
초기 송욱의 시에서 ‘몸’은 상징적으로 묘사되는데 추천시 (1950)에서부터 1954년까지 발표된 시를 묶은 시집『유혹』(1954)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전후 문제 시인 연구 1(2005), 김학동외, 예림기획
한국 시인 탐구(2004), 이건청, 새미
한국 근현대시론사(2007), 문혜원, 역락
송욱 연구(2000), 김학동, 역락
해방 후 한국 시인 연구(2004), 이건청, 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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