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사기극 시화호의 비극
- 서론
앞에서 보신 바와 같이 시화호 개발은 환경적 재앙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이러한 개발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고 있지 않습니다. 시화호의 물이 썩어 악취를 풍기고, 말라붙은 갯벌에서 소금바람이 불더라도, 이곳 고려대학교의 푸른 녹지 캠퍼스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우리는 이러한 오염에서 일정부분 무관하고 약간의 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재앙에서 비켜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생태환경 문제가 초계급적, 전지구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계급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쉽게 말해 환경 파괴가 벌어지더라도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는 방어능력은 성, 연령, 소득,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이에 따른 피해도 결국 가장 취약한 계급과 집단, 지역에 전가되고 있는 측면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화호의 환경 재난도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표에 앞서 밝혀 둡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화호의 환경 재난이 우리 사회공동체 전반에 주는 위해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시화호 인근의 주민들의 직접적인 피해를 그들의 인권보호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현재 사업시행 여부를 두고 논의 되고 있는 ‘새만금간척 사업’ 이 제 2의 시화호를 낳지 않도록 시화호 조성사업의 문제점을 분석해 보는 방향으로 발표를 하겠습니다.
- 본론
1. 시화호는 왜, 무엇을 위하여 만들어졌는가?
시화호 간척사업의 가능성은 1960년대부터 검토되었고, 한국수자원공사에 의해 1987년 6월부터 사업이 진행되어 1994년 1월에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초계획에 의하면 시화지구에는 농경지와 공업 단지, 그리고 용수를 공급할 담수호가 조성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물막이 공사로 인해 해수의 이동이 사라지고, 새로운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시화호는 인근의 산업공단에서 방출하는 폐수와 생활하수에 의해 썩기 시작했고, 겨울철 담수호 결빙으로 인한 급격한 기온하락, 방대한 갯벌이 마르면서 부는 소금바람의 피해등 여러 환경적 재앙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2. 어느날 갑자기 공사가 시작되다.
이러한 환경적 재앙들은 공사 이전에 이미 환경 영향평가의 단계에서 충분히 예측되고, 고려되었어야 하는 측면인데도, 사업을 주도한 당시 정부는 이러한 사전조사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협소한 국토 면적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간척사업은 필수다.”는 개발이데올로기와 아까 인터뷰에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중동개발에 투입되었던 중장비들을 이용할 대규모 개발 사업이 “필요” 했던 것이 이러한 사전조사 없이 사업을 강행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시화호 사업이 얼마나 사전 준비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 졌는가는 사업 시행자인 수자원공사조차 언론보도를 통해 사업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자원 공사의 당시 문건입니다.
“언론 보도 내용 중 우리 공사 직원들을 가장 기쁘게 한 것은 사업 주체가 산업기지개발공사(현 한국수자원공사)라는 점이었으며, 가장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1단계 사업에 대한 실시 설계를 2개월 이내에 착수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 한국수자원공사,1994 629~630 쪽
이렇게 사업을 실제로 시행할 주체인 수자원공사조차 배제된 가운데 결정되었던 시화지구 개발 사업은 이후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사업으로 인해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될 주민들의 의견이나 배려는 거의 중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개발 이전 시화호 인근 주민들의 삶의 모습
시화호 인근 섬과 포구에 살았던 주민들은 대개 굴양식을 하거나, 어선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가진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이들은 인근 해역에 나가 게, 농어, 우럭 등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후 굴양식을 대규모로 하게 되고, 80년대 들어 수산물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서 이들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지키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일부는 해양성 기후에서 생장하는 포도를 기르며 농사를 지었고, 예전엔 경치가 좋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횟집, 여관업, 슈퍼 등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4. 시화호 개발 사업을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