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 본소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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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시 써 본소 나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시 써본 소나기
소녀는 며칠간을 앓아야만 했다. 몸이 원채 좋지 않았던 터라 갑작스레 맞은 비는 여린 소녀에게 지독한 감기를 가져다주고야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 아픔들 까지 소녀는 고스란히 느껴야 했었으나 이상하게 이번엔 그렇지마는 않았다. 자신에게 걸쳐 주었던 소년의 그 오래된 겉옷 한 장이 다른 어떠한 도톰하고 따스한 이불보다 자신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것만 같았고, 비록 개울엔 나가지 못하여 소년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몸이 나아지기까지 방에 누워 소년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소년에게 말을 걸기까지의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소녀가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녀야 할 때 즈음. 서울에 살던 소녀의 가족은 저 멀리 시골로 이사를 왔다. 소녀의 부모님은 소녀에게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려웠던 소녀의 건강을 위해 내려온 것이라고 그 연유를 설명하곤 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진 소문으로는 소녀 아버지가 추진하고 있던 사업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서울에서 편하게 발붙이고 살기 힘들어진 것이 마을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퍼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내던 소녀에게 갑작스런 시골생활은 불편할 법도 하였을 텐데 어떠한 이유 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녀에겐 그 곳이 썩 나쁘진 않았다. 맑은 개울이 있는 마을. 서울에선 흔히 볼 수 없었던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어디를 가든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정신없이 울려대던 자동차 경적소리 없이 큰 숨을 들이쉬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바람에 들꽃이 흔들리는 소리와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잔잔한 음악처럼 들려오는 그 곳이 소녀는 마음에 들었다. 또 학교에 갈 수 없어 동무가 없던 그녀에겐 여간 반가운 놀이거리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개울에 드문드문 놓여있는 징검다리에 앉아 있다 보면 맑디맑은 물은 거울처럼 소녀의 얼굴을 비쳐주었고 신기함에 물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쁜 듯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작은 물고기 떼를 만날 수 있었다. 손을 담갔을 적에 손에 전해지는 흐르는 물의 감촉이 소녀에겐 즐거움이었고 손을 간질이듯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강줄기가 마냥 그녀를 웃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소녀가 개울에 나가는 것이 단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니게 되었다.
강물이 조금은 따스해 질 적이면 그 소년은 개울에 나타나곤 했다. 보통학교에 다니는 아이였을까? 까맣게 탄 얼굴에 까까머리의 소년. 소녀와 비슷한 또래같이 보이던 그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보며 늘 머뭇거리기만 했다. 소녀는 소년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 말을 나누는 것이라곤 어른들 뿐이었던 소녀에게 그 소년은 얼마나 반가운 사람이었는지 소년은 몰랐으리라. 소녀는 ‘쟤가 나와 말동무가 되어줬으면…….’ 하는 생각에 어느 날 부터인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징검다리 한 가운데에 앉아 그 소년을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적어도 내 이 개울을 건너가야 하니 좀 비켜도 라는 말이라도 건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가 징검다리의 주인인 양 앉아있을 때에도 그 소년은 지나가게 비켜달라는 말 한 마디조차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개울을 건너야 했을 때 소녀가 자리를 비키기를 기다려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사내아이가 되서는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르는 사내아이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먼저 말을 건넬 만한 행동을 한 것이 소녀 자신에게 너무 도드라져 보여 얼굴이 붉어진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오후를 보낸 소녀는 서운한 것으로 모자라 붉게 물든 자신의 얼굴조차 보지 않는 그 소년이 미워 물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하얀 조약돌을 집어내어 건너편의 소년에게 던졌다. 아니, 소녀는 소년에게 그 조약돌을 건넸다. 눈치라고는 그 작은 조약돌만큼도 없는 소년에게, 소녀가 먼저 마음을 건넨 것이다. 소녀에겐 다른 어떤 마음보다 그 아이가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걸까. 조약돌이라는 것은 어쩌면 흔하고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여자인 자신이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그 소년에게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순 없어 멀리서나마 소년에게 소녀 자신의 존재와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 찾은 개울가의 작은 수단이었다. 소녀는 그날 이후 개울에 쉽사리 나가지 못했다. 자신이 그날 보였던 행동이 부끄러워서 인 것도 있었으나, 그것보다 겁이 났다. 그렇게 까지 마음을 표현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자신을 모른 체하고 소년이 지나친다면 그 개울에 더는 못 나가 놀 것이라는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정말 오랜만에 본 또래 아이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소녀를 불안하고 속상하게 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소년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전처럼 개울에 나가 물장난을 치지는 않았으나 개울 근처 하이얀 갈꽃이 만발한 갈대숲근처에서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는데, 꽃들 사이로 보이는 소년의 모습은 며칠 전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징검다리 중간에 앉아 손으로 괜히 물을 흩뜨려도 보고 물속에 어떤 것이라도 있는 듯이 손으로 물을 움켰다 놓았다 하기도 하고 혹시나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고개를 자주 돌려 주변을 바라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녀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소년이 자신이 던졌던 조약돌을 자꾸만 바라보고 고이 손에 쥐어보다가도 잃어버리면 안 되는 귀한 물건인양 주머니 속에 잘 챙겨 넣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켜보기를 몇 날, 소녀는 갈꽃을 몇 송이 끊어 손에 쥐어들고 개울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갈꽃을 한 송이씩 물에 흘려보냈다. 물살은 잔잔히 흘러 그 꽃들을 소년이 앉아 있는 돌다리 근처로 보내주었고,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다 물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려던 소년은 물살을 따라온 갈꽃을 보고서야 소녀가 개울 저편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년은 큰 잘못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다 돌다리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고민하며 수줍어하던 소녀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해맑은 웃음으로 소년과 마주할 수 있었다. 멋쩍어 하는 소년에 비해 소녀는 소년이 익숙하리만치 편했다. 도시의 또래들과는 다르게 소년은 순박하고 친절했으며 하루 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것, 동무들과 있었던 일들을 소녀에게 재미있게 전해주곤 했다. 그 이후로 소녀와 소년은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해가 주홍빛으로 구름을 물들일 때면 개울가에 나와 서로를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소나기가 내리던 그날 역시도 그러했다. 개울에서 여느 날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소녀는 소년에게 산에 데려가 달라고 졸라댔다. 소녀는 들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 소녀에게 가을산은 천국과도 다름없었다. 책 속에서만 보던 꽃들이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에 만개 해 있었고 손을 뻗으면 만져볼 수 있었으며 책에선 차마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향기들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다. 소년과 함께했던 그 걸음은 더할나위없이 즐거웠으나 그날따라 소나기가 내려 꽃구경을 못 다하고 내려와야 했다.
“몸은 좀 어떻나? 아직도 많이 아프나?”
마을로 이사 오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소녀의 건강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소년은 자신이 소녀를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헤진 고무신 끝으로 애꿎은 풀들을 휘저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으나 소녀는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건네는 소년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몸이 정말 많이 괜찮아졌다며 시골은 정말 좋은 곳 같다는 등 그동안 못 다한 말을 소년에게 해대는 것이었다. 걱정과 미안함으로 소녀를 제대로 보지 못하던 소년도 그러한 소녀의 이야기에 어느새 소녀와 눈을 맞추며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 때 그 꽃들 정말 예뻤는데……. 소나기 내려서 꽃잎이 다 떨어졌을 거야. 그렇지?”
“그게 그렇게 좋았나? 난 만날 보던 거라 모르겠던데”
“치... 다시 보러 가고 싶다 나는…….”
소녀는 소나기가 내리던 날 못 다 본 꽃들이 아쉬운 듯이 소년에게 이야기 했다. 소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이런 것으로라도 소녀에게 으스대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소년은 소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 소녀가 조약돌을 건넸을 때 소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 해주었던 것처럼 소년도 소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조약돌을 항상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며 소녀를 기억하는 것처럼 소녀도 소년자신에 대한 기억을 항상 지니고 기억해 주었으면 했다.
다음날 소년은 지난 날 소녀와 올라갔던 산을 혼자 올라갔다. 한 손에 하얀 조약돌을 들고 오르는 산길은 마치 소녀와 함께 걷는 듯 한 기분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소년은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지난 날 소녀가 물어보았을 때 왠지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어물어물 생각나는 이름을 지어 대답했었던 들꽃을 몇 송이 꺾었다. 소녀가 즐겨 입는 옷 색과 같은 분홍색 꽃이 보이기에 그것도 한 움큼 움켜내었다. 소녀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다가 왔을 때 자신에게 먼저 보냈던 갈꽃도 몇 가닥 끊어냈다. 마을에 살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익히 보았을 꽃들이었으나, 지금 소년에게 그 꽃들은 새삼스러운 것들로 느껴졌다. 이렇게 예쁜 색깔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렇게 달콤하고도 수수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었는지, 무엇보다 소년 자신에게 행복한 미소를 띠게 하는 것들이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소녀의 밝은 웃음을 보게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으며,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 꽃들에게 괜스레 미안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닌 걸까? 손에 모아놓은 꽃들을 보니 제법 가득하다. 어느덧 산에 올라온 지 꽤 오래도 된 것 같고 소녀를 만나러 갈 때가 가까워 오는 듯 했다. 소년은 바로 개울가로 가지 않았다. 소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갈꽃 밭에 숨어 소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 만치에서 단발머리 소녀가 전처럼 고운 분홍색 옷을 입고 종종 걸어와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때쯤 꽃을 한 아름 들고 징검다리 쪽으로 나선다. 소년은 손에서 전해지는 향기가 참 좋았다. 이제는 아프지 않고 웃으며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