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배따라기 배따라기의 선율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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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동인 배따라기 배따라기의 선율을 따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의 선율을 따라
- 김동인 -
1. 서론
작가 김동인은 1919년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며, 처녀작 「약한자의 슬픔」을 발표한다. 이후 「마음이 옅은 자여」, 「배따라기」와 같은 작품을 발표하며,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 1925년 발표한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은 작품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적 성과로 일컬어진다. 「광염 소나타」, 「광화사」와 같은 작품들은 1930년대에 들어 발표된 작품들로, 특히나 예술가의 일생을 다룬「광염 소나타」는 김동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1932년 「붉은 산」,「삼천리」등을 비롯하여, 에「운현궁의 봄」을 연재한다. 김동인은 일생에 거쳐 장편 15편 이상과 단편 75편 이상을 발표 한 다작(多作) 작가이자. 각 작품 속에서 낭만주의, 탐미주의를 비롯한 자연주의, 사실주의 등의 다양한 시도들을 한 작가이기도 하다.
김동인이 발표 한 수많은 작품들 중 는 1921년 6월 『창조』에 발표 된 작품으로, 김동인의 본격적인 단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과 구조의 짜임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적인 초기 단편 소설로 평가 받고 있으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서정성과 더불어 짙은 낭만적 색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러한 언급들은 과연 작품 안에서 어떻게 구현이 되고 있는가. 나아가 이러한 요소들이 작품의 의의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본고에서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의 시점, 구조, 그리고 작품의 표현 방식이라는 요소들을 통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2. 시점
이 작품은 크게 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로 시작되는 부분과 곧이어 로 들어가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도입부분에 쓴 ‘좋은 일기이다.’라는 표현이 과연 ‘현재의 나’가 쓴 부분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본고는 좋은 일기가 두 번이나 반복되어 쓰여 있다는 점, 후자에 쓰인 좋은 일기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게 해주는 동일한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 작품 뒷부분에 와서 다시 현재형으로 돌아오면서 그 주체가 나의 입장에서 현재형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나’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만난 ‘그’를 통해 로 전개된다. 한 인물의 현재와 과거가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인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시제와 시점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이 두 요소가 어떤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작품의 첫 부분은 ‘좋은 일기이다.’로 시작하고 있다. 좋은 일기 속 ‘사랑의 하늘’을 매개로 하여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 모란봉 기슭 풀 위에 뒹굴고 있던 나로 돌아간다. 이는 현재형 ‘이다’에서 ‘었다’의 시제 변화를 통해 과거의 이야기로 전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서는 ‘나’의 눈에 비춰진 봄의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하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영유 배따라기’ 노랫소리를 따라 ‘나’가 그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와 만난 후, 그가 나에게 들려주는 그의 경험담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가 나온다. 가 끝나고 나서 그는 떠나고, 그와 헤어진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그를 찾는 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에서도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과거형 ‘았다, 없었다.’에서 현재형 ‘않는다, 따름이다’로 시제가 바뀌게 됨으로써 는 끝이 난다. 결국 현재의 나, 좋은 일기를 매개로 이야기를 펼치기 전의 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를 좀 더 살펴본다면, 시점에 있어서 특징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부분에서 나의 생각이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1인칭이기는 하나 ‘나’를 ‘어떤 신사’라고 표현한다거나, 나의 말과 생각을 직접화법으로 따로 서술하여 자기를 객관화하고 있다. 좀 더 나아가 시점을 통해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분리해둔 특징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내가 하는 나의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의 시선에서 보는 것을 전제로 하여 ‘과거의 나’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보게 해 두었다. ,
그렇다면 속, 그와의 만남에서 들은 는 누구의 관점에 의해 설정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전개 흐름 상 를 들은 나의 입장에서, 그의 이야기를 요약해 전달해주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그가 경험한 것을 그에게서 듣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로 서술되어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본다면, 서술자체는 ‘그에 제한하여 본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가령 다른 누구에게 무엇을 듣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때에 나타나는 ‘했다더라, 하더라’ 식으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에서 그의 주변에 관한 정보를 상세히 드러내고 있고, 전반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단순히 서술’ ‘단순히 서술’하고 있다 함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드러나는 서술 형태를 말한다. 작중 인물 어느 누구의 선도 개입되어 있지 않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해두었다고 생각하였다. (단, 그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이기에 그에게 놓여있는 상황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은 놓쳐서는 안 되겠다. 이는 뒷부분에서 알 수 있겠지만, 그에 제한하여 본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표현해두었다.)
하고 있는 문장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임에 한해서 그의 생각이 드러나는 정도가 조금 보일 뿐 어느 누구의 시점도 나타내고 있지 않다. 속 대화에서도 그의 대화는 직접 화법으로 되어 있다는 점, 임에도 이야기 속 그는 ‘그’로 객관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