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러시아 명작의 이해 보고서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가 다른 미디어들과의 경쟁에서 패배를 거듭하여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보일 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86)이 마치 구원처럼 등장했다. 이미 타르코프스키는 △안드레이 루블료프(1971) △유성 솔라리스(1972) △거울(1975) △밀렵꾼(1979) △향수(1983) 등의 영화로 거장이라는 명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한 구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이 위대한 영화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촬영한 향수(1983) 발표 뒤 1984년 망명하였다. 1986년 만들어진 희생은 그의 유작인 셈이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자신의 태를 묻은 조국을 버리고 망명지에서 만든 영화이니만큼 희생 이 타르코프스키에게 지닌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 영화를 만들 무렵 그는 암과 가망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줄거리
은퇴하여 가족들과 함께 사는 대학교수 겸 연극 배우인 알렉산더(얼란드 요셉슨 분)는 막내아들과 함께 죽은 묘목 한 그루를 바닷가에 심는다. 그는 원인 모르게 말문을 닫아버린 막내아들에게 죽은 나무에 3년 동안 물을 주어 마침내 그 나무에서 꽃을 피게 만들었던 한 수도승의 일화를 들려준다.
알렉산더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3차 대전 발발 소식이 들려온다.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알렉산더는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는 신에게 간구한다. 만약 내일 아침잠에서 깨었을 때 세상이 오늘과 다름없이 평화롭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겠노라고.
우체부 오토(앨런 애드월 분)는 이런 알렉산더에게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것은 아이슬랜드에서 온 이방인 처녀 마리아(발레리 메레스 분)와 잠자리를 함께 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토의 권유로 그녀를 찾아가지만 알렉산더는 거절당하고 만다. 알렉산더는 자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자신의 청을 들어줄 것을 요청하고 결국 그녀와 동침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알렉산더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은 아무 일 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간구를 신이 들어주신 것으로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집을 불태우고 결국 정신병자로 몰려 앰블런스에 실려간다.
그리고 얼마 후 말문을 닫았던 알렉산더의 막내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심은 죽은 묘목 아래 누워 입을 연다. 막내아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였다. 놀랍게도 막내아들이 누워있는 묘목은 정성을 다한 막내아들의 물주기 때문인지 무성하게 자라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감상평
희생은 시적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답게 전통적인 줄거리를 지녔지만 드라마적인 요소는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자칫 이 영화의 짧지 않은 상영시간이 지루하게 여겨지게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지루함을 참고 답답함을 견디며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였던것 같다.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 주제의식의 명료함과 이를 형상화하는 솜씨의 탁월함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희생이야말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진가를 더해가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알렉산더와 마리아를 통해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타인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라는 것을 나직히, 그러나 힘주어 말하고 있다.
희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알렉산더가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인류를 구하고자 신에게 서원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알렉산더는 한바탕 사나운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사실 관계는 전혀 중요치 않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타인을 위한 헌신과 희생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타르코프스키가 보기에 인간의 조건은 소유가 아니고 희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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