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예능의 시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에 이어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SBS) 예능 토크쇼 에 출연하면서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의 출연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고, 후보와 시민의 소통 기회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능의 특성상 이미지 정치로 변질될 수 있고 이는 정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하나의 사건
[사설칼럼 논쟁1 찬성의견] 정치에 대한 관심 키울 좋은 기회 이승한 TV평론가(한겨레 오피니언, 2012-7-26)
는 미국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말수가 적고 점잖은 중년 남성 스티븐 콜버트는, 월요일부터 목요일 밤 11시30분만 되면 공화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극우 논객 스티븐 ‘콜베어’로 변신한다. 의 극우 방송인 빌 오라일리의 언행을 흉내 내어 만든 캐릭터 콜베어는, 를 통해 네오콘들의 주장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그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상궤에서 벗어났는지를 폭로한다. 여기까지는 뭐, 흔한 이야기다. 미국은 원체 정치 풍자가 흔한 나라니까.
이 프로그램이 다른 코미디 쇼와 명확하게 차별이 되는 지점은, ‘434부작’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단 시리즈물 ‘지역구 알기’ 코너다. 미국의 434개 지역구를 전부 소개하는 것이 목표인 ‘지역구 알기’에서, 콜베어는 해당 선거구의 하원의원을 인터뷰한다. 평범한 인터뷰를 기대했던 의원들은 난처하고 엉뚱한 질문만 막무가내로 던지는 콜베어 앞에서 당황하고 때론 할 말을 잃는다. 일리노이 제5지역구 하원의원에게 옆 동네 찬가인 ‘내 사랑 시카고’를 불러보라 부추기는 콜베어는 확실히 평범한 인터뷰어는 아니다.
그런데 이 속에 뼈가 있다. ‘동성결혼 금지 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소신 투표를 한 공화당 하원의원 마이크 캐슬에게, 콜베어는 뜬금없이 자신이 닭하고 결혼해도 괜찮은가 묻는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동물과의 결혼도 허용해야 하나?’라는 극우 논객들의 억지를, 콜베어는 공화당 하원의원의 입을 빌려 파훼한다. 단순히 비아냥거리고 끝나는 코미디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어떤 정책을 지지하며 얼마나 소양이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웃음이란 당의를 씌워 전달하는 의 인터뷰는, 보는 이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이쯤 해서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한국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기껏해야 인간적인 면모나 부각시켜주고, 껄끄러운 질문은 적당히 넘어가 주지 않느냐고.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 예능 쪽으론 눈길도 안 주던 ‘귀하신 분’들을 선거가 임박해서 불러다 ‘모셨’으니, 묻는 입장에서도 불편하고 답하는 입장에서도 어색할 수밖에. 정치인을 데리고 코미디를 해본 적이 없던 이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정치인들의 진면모를 밝혀내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정치인의 예능 출연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예능에 더 자주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대선주자가 예능에 나오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나선 사람이라면, 활용 가능한 모든 창구를 통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할 의무가 있다. 만약 웃음의 당의를 쓴 예능의 형태가 더 많은 국민과 만나는 데 적합한 형식이라면, 정치인들도 그것을 마다해선 안 되고 방송도 그것을 겁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이돌만큼, 탤런트만큼 더 흔하게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다. ‘귀하신 분’이 아니라 ‘흔한 사람’이 되어야, 예능인들도 더 편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기사] 안철수‘힐링캠프 출연’위법은 아니다 (문화일보, 20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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