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와 생명과학
생명 복제로 세계를 들끓게 했던 복제양 돌리를 예로 생명윤리와 생명과학을 논해 보려고 한다. 고작 양 한 마리의 탄생이 세계를 들끓게 한 이유는 이 양이 체세포 복제를 통해 만들어진 클론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명 복제에 관한 연구는 진행 중 이었으며 수 십 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영국에서 처음으로 고등동물의 체세포 복제가 성공하게 되었다.
돌리의 탄생 그 자체는 순조로운 출생이었으나 그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특히 종교계와 생명윤리를 주장하는 운동권 인사들의 노골적인 반대 투쟁으로 생명 복제 연구는 오랜 기간 동안 진전이 되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복제양 탄생과 동시에 일부 사이비 종교에서는 비밀리에 인간의 복제가 이루어졌음을 주장하였고 많은 윤리단체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연구라며 이 돌리의 탄생과정을 규탄하였다.
생명 복제는 인간 복제로, 종교 인사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소설가들이 인간복제가 일반화된 부정적인 미래 사회를 그려내며 복제 연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 결과 돌리의 탄생은 윤리를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었고 인간의 업보로 인해 태어난 죄 없는 어린 양이 이 엄청난 죄를 뒤집어쓰게 되고 말았다.
그 이후, 복제연구는 여전히 크게 진전되지 못한 채 모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그라질 즈음인 2002년 돌리는 진행성 폐질환으로 죽고 말았다. 돌리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연구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돌리의 직접적인 사인은 노화였다고 한다. 양의 최대수명이 12~15년인 것을 감안한다면 6살인 돌리는 결코 노환으로 죽을 나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돌리를 만든 모체의 나이는 6살이었고, 그로 인해 돌리의 유전자 역시 앞으로 6~8년밖에 남지 않은 수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의 과정으로 본다면 생명복제 연구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돌리의 탄생과 죽음은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론적인 가능성으로도 돌리의 이른 죽음은 예견되어 있었지만 돌리를 탄생시키고 성장시킨 과학자들에게 돌리의 죽음은 어린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처럼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돌리의 죽음을 보고 환호한 것은 오히려 생명의 윤리를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생명의 복제 연구 그 자체는 생명을 경시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 반대로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연구이다. 선천적인 장애와 질환, 그리고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질병 및 장애를 겪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의 빛을 안겨주기 위한 노력으로 위한 생명존중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복제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가게 되는 것은 자본과의 결탁으로 오염이 될 때 뿐 일 것이다.
돌리의 죽음 이후, 자칭 윤리학자들은 이 결과를 이용하여 생명 복제의 결점을 조명했다.
인위적으로 창조된 생명이기 때문에 제 생명으로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처럼 깎아내리던 그들, 결국 돌리가 제 생명 그대로 살지 못하게 된 것은 그들의 저주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연구를 위해 탄생시켰지만 돌리가 제 수명대로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랬던 과학자들과 돌리의 이른 죽음을 내심 환영하고 있던 윤리학자들, 그들 중 생명을 경시한 쪽은 어느 쪽이었을까.
물론 생명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의학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명을 창조한 과학자들의 연구도 경솔했겠지만 수 십 년간 연구를 진전시키지 못하면서도 강행한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면 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뒷받침으로밖에 쓰지 못하는 윤리학자들의 태도야말로 더욱이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는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가 오역한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였다. 인간으로서 생명의 가치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지 의문이다. 단지 그 과정이 잔인하다는 이유만으로 북극 이누이들의 생업인 물개사냥을 금지시키면서도 자신들의 푸아그라 생산은 상당히 고고한 식생활의 산물인 것처럼 말하는 어떤 사람들도 있다.
윤리라는 것은 소위 윤리학자라 칭하는 자들의 장신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복제라는 것 자체의 옳고 그름을 가름하기 전에 돌리의 탄생은 그 자체로서 축복받을 것이고 어떤 생명이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고 제 수명을 누릴 권리가 있다. 생명의 존엄성을 저울질하기 이전에, 생명 그 자체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다면 누가 감히 윤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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