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와 저작
1561년 옥새상서 니콜라스 베이컨 경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573년 12살 때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베이컨은 3년간 공부한 뒤 그레이인 법학원에 입학했다. 법학원 공부 도중 베이컨은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를 보좌하면서 프랑스 각지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여행했다. 157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귀국해서 법학원에 복귀한 베이컨은 1582년 법정변호사 자격 취득, 1584년 의회진출 1586년 법학원 대표위원, 1588년 법학원 교수가 되었다.
1617.3.7 중세 영국 국왕의 최측근 관직, 옥새상서에 임명되었다.
1618년 젊어서부터 열망해 마지않던 대법관이 되었다.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을 1620년에 출간하면서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전성기였지만, 1621년 5월 베이컨은 뇌물수수를 포함한 20여 건의 부패 혐의로 의회의 탄핵을 받고 기소당했다. 뇌물수수사건으로 의회의 탄핵을 받아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한 뒤
만년을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학문의 올바른 방법론을 위한 거대한 기획을 하고, 6부로 구성되는 방대한 저술 [대개혁 Instauratio Magna]을 구상하고 집필에 들어간다. 이 거대한 기획은 과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대개혁]의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집필할 계획은 아니었고, 자신이 중요한 부분과 각 부의 머리말과 서문을 쓸 계획이었다. [대개혁]의 1부는 학문의 구분, 2부는 자연의 해석에 관한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의 방법론, 3부는 우주의 현상과 철학의 토대를 위한 자연사와 실험의 역사, 4부는 자연사의 방법론과 철학의 방법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인 지성의 사다리, 5부는 새로운 철학에 대한 기대, 선구자, 그리고 6부는 새로운 철학, 능동적인 철학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획은 1부와 2부 외에는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대개혁]의 1부에서는 학문의 분류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그가 1605년 발표한 [학문의 진보]를 수정, 보완하여 훗날 [De Dignitate et Augmentis Scientiarum)으로 발표된다. 제2부 「신 기관, 또는 자연의 해석을 위한 지침」에서는 학문의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귀납법을 제창한다. 『신 기관』이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데, 제1권은 130개 단장(斷章)으로 완성되어 있지만 제2권은 미완성 상태에서 그치고 있다. 신 기관에서는 스콜라철학의 연역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법인 귀납법을 제창하였기 때문에 근대의 과학정신의 초석을 닦은 저작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1626년 3월 베이컨은 런던 북쪽 하이게이트 근처에 마차를 타고 나갔다가 문득 눈이 부패과정을 지연시키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닭을 한 마리 사서 박제로 만든 뒤 그 속을 눈으로 채우는 실험을 했다. 그 일로 기관지염에 걸려 4월9일 사망했다.
2. 시대배경
베이컨이 살던 시기는 유럽에서 근대가 뿌리를 내리는 시기였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여 휴머니즘 풍토를 조성하였다. 또한, 15세기부터는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 등이 알려지면서 유럽인들은 더 넓은 세계관을 갖게 되었으며 16세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종교 개혁은 교회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16세기 후반 영국에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스콜라 철학, 학문적·미학적 인문주의, 신비주의 등 3가지 사상체계가 퍼져 있었다. 학교 교육의 주된 내용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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