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우리나라의 쇄국정책
1. 서론
우리는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화라 함은 국가, 사회, 개인이 자유롭게 다른 문화, 경제와 교류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 세계화와 관련하여 현대에 가장 큰 이슈중의 하나는 근대화이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전 세계는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800년대, 많은 서구열강들이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인 조선에 관심을 갖고 문호를 개방하게 하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조선의 정치적 실권을 잡고 개혁을 하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앞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인물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인 것이다. 그는 삼정제도의 개선과 서원의 철폐, 정치제도의 재정비와 경복궁의 재건, 천주교 탄압과 쇄국정책의 강행 등에는 역대의 어느 제왕에게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강경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쇄국을 택해 서구 열강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나는 대원군의 개혁들 중에 특히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쇄국정책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고 그에게 성적을 준다면 어떤 점수가 나올 것인가. 그리고 그의 ‘성적’이 주는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개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꼭 한번 고찰해 볼 문제인 것이다.
2. 본론
1) 쇄국정책에 관한 논쟁은 무엇인가
그는 완매하고 고루하고 세계 대세에 눈이 어두워 척외했고 결과적으로 이 국가를 낙오로 만들었으니 그가 역사에 지은 죄과는 지대하다
대원군은 정녕 양반 유림의 전근대적인 지도 이념과 불법 특권에 정면으로 항거한 이 나라 최초의 근대적 정치인이요, 국정 개혁의 선구자였다. 대원군의 존재는 정녕 정치적인 근대화의 과감한 선구자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원군의 쇄국정책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대원군의 정책에 대해 후세의 역사가들은 대체로 대원군이 당시 국세정세에 관한 안목이 전혀 없고 그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격에서 이러한 정책을 택한 것으로 기술한다. 특히 대원군의 쇄국 정책은 이하응의 폐쇄적 외교노선을 통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망국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요즘같이 국제화, 세계화가 이야기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명성황후와의 외교노선관의 차이로 인한 감정적 대립과 권력욕(왕의 아버지로 어린 아들을 대신해 권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린 세도가라는 비판)으로 인해 세계정세에 눈이 어두워 무리하게 쇄국정책을 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대원군은 단지 양이(攘夷)해야 보국(保國)한다고 생각했을 뿐 부국강병을 생각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폐쇄적인 외교 정책을 펼 생각은 없었다고 보기도 한다. 즉 대원군의 양이 보국은 ‘왕권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질서유지’였다는 의견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조국 방위 전쟁과 근대적 민족 운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2)대원군의 쇄국정책에 관한 나의 입장
-대원군의 쇄국정책, 과연 올바른 것이었나.
가. 경제적 관점에서의 고찰
인물로 보는 조선사, 김형광, 2002
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박현, 1997
한국사 새로 보기, 신복룡, 2001
실패한 개혁의 역사, 역사문제연구소, 1997
나라경제지 1991년 10월호
쟁점으로 본 한국사-그때 세종이 소리친 까닭은, 김육훈,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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