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元祖찾기를 통해서 본 한국의 국민성 연구
Ⅰ들어가며
한 사회의 성원들은 어느 정도 공통적인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다. 따라서 사회 성원의 성격 즉 인성에는 상당한 정도의 규칙성이 나타나게 된다. 사회의 단위를 국가로 규정했을 때 성원들의 인성 구조를 ‘국민성’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이론을 좋아하는 독일인, 직관적이며 매사를 예술적으로 보는 프랑스인, 개척정신이 강하고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미국인, 전통을 존중하고 신분계급의식이 강한 영국인, 질서를 존중하고 집단의식이 강한 일본인 등 각 나라의 국민성은 이와 같은 고정형의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비록 한 사회의 성원은 각자 고유의 인성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 사회에서 학습의 결과로 인해 공통의 인성형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사회의 국민성을 성격이 급하다 하여 ‘냄비’에 비유하기도 하고, ‘모래’로 비유하여 개인주의를 꼬집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어떠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문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한다. 최근 우리사회는 ‘짱문화’에 이어 ‘짱’의 ‘원조찾기’가 유행이다. 이러한 원조찾기라는 사회현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어떠한 국민성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원조찾기에 대한 문화현상에 대하여도 우리나라의 빠르게 변화하는 매스컴문화나 쉽게 모든 것에 질리기 때문에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으려는 성향 등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원조찾기가 가지는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고, 이러한 ‘원조찾기’가 우리나라의 국민성과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본론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 고등학생이 올린 여고생들의 사진이 네티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얼짱’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뒤이어 얼짱에 대한 ‘짱’문화는 ‘몸짱’이나 ‘싸움짱’등으로 이어졌고 모든 사회현상에 대하여 최고로 뛰어나다는 의미를 붙여 ‘짱’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짱문화가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짱문화가 급속히 퍼지다가 사람들에게 식상해질 무렵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짱의 원조를 찾는 ‘원조찾기’이다. 중견탤렌트의 젊은 시절 찍은 사진을 통해 얼짱이라는 원조를 찾고, 음식의 원조를 찾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대거 생기는가 하면, 음식집의 간판은 ‘ОО원조’라는 상호를 걸고 원조임을 내세워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사회는 사람의 외모에 한정시키지 않고 음식이나 물건에도 그 원조를 찾아 헤메이고 있다.
원조의 사전적 의미는 ‘한 겨레의 맨 처음 조상이나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원조라는 용어는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난 용어가 아니라 예전부터 국한적으로 일명 먹자골이라 불리우는 음식의 거리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런 먹자골에서 원조는 ‘맛있다’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원조로 알려진 음식점에는 항상 발디딜 틈이 없다. 이처럼 우리에게 원조는 시작의 의미도 되지만, 짱문화에서 처럼 ‘뛰어난 혹은 최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 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원조’라는 명칭을 찾고 따지기를 좋아한다. 누가 시작했는가는 사람이나 물건, 음식등의 지위를 결정짓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조는 ‘근본’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국민성과 연결시킬 수 있다. 예전부터 나의 경험에 의하면 집안 어르신께 항상 어디 ‘최’가 이며, ‘파’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위해 가끔 시험 보듯이 물어보거나 써보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사람을 만날때 우리는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고 상대방이 이름만 말하고 성을 말하지 않으면 꼭 재차 성을 물어 보곤한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이름과 성을 물어보고 나서 성이 같으면 파를 물어보거나 하여 상대방의 근본을 알려하고, 서로 일치하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인 냥 친밀한 관계가 성립된다. 이처럼 근본을 찾으려는 시도는 매스컴을 통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보면 고아인 며느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 시어머니가 “근본도 모르는 아이를 어떻게 우리집 며느리도 들일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즉 원조찾기는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유교주의적 근본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근본’에 대한 강박관념이 존재하기도 한다. 국회의원에게도 ‘근본’은 중요하다. 공산주의라는 근본은 국회의원에게 정치생명을 마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어떤 정당을 선택했는가는 그 국회의원의 ‘근본’ 즉 정치적 위치가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원조’ 또는 ‘근본’은 항상 중요시된다. 우리는 항상 음식에서도 사람에게서도 그 근본을 찾고 알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으며 원조는 항상 ‘좋은 것’ 또는 ‘뛰어난 것’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또한 원조를 모른다는 것은 물건을 ‘짝퉁’으로 사람에 대한 대응방식을 다르게 한다. 이것은 달리 생각해보면 원조 이외의 것들은 모두 원조를 모방한 아류일 뿐이며 원조를 능가하지는 못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원조가 아니면 무시해도 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원조찾기는 앞의 드라마 사례에서 처럼 소위 근본이 없는 고아인 사람에게는 개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으며, 원조라하여 모두 뛰어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칼국수의 원조라 하여 조금 비싼 돈을 지불하고 먹었으나 원조라는 이름에 버금가는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못하였다. 우리사회는 원조를 중요시 생각하면서도 원조에 걸맞는 소위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조는 항상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우쭐하게 된다. 그래서 변화가 없다. 원조를 자청하는 식당은 아무리 허름한 곳일 지라도 원조니까 이해가 간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또한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근본이 있어야 그 사람의 위신이 선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먼저 나오고 성이 나중에 나오는 서양의 이름에서 처럼 한 개인을 그 자체로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이 나온 후 이름이 따르는 우리나라의 이름 표기는 개인보다는 개인이 소속된 집단을 중요시 하며 이는 개인의 근본찾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에 의해 더 나아가 성에 따른 근본에 의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Ⅲ나오며
요컨대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근본’을 중요시한다. 가족이나 혈연을 떠나 개인 자체를 보려는 서양과는 달리 우리사회는 이름에서 근본을 찾고 그 근본에 따라 개인을 정형화 시키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사회의 정형화에 어긋나는 입양아나 혼혈아 또는 고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또한 이러한 ‘근본’에 대한 사고는 기업이나 물건, 음식으로까지 퍼져 있다. 어떤 물건의 원조는 형태, 기능, 값을 떠나 가치가 높게평가된다. 그래서 우리는 ‘원조’를 지칭하고 동일한 물건이나 음식에서 수 많은 ‘원조’가 양산되는 사회 현상을 가져왔다.
우리사회에 ‘원조’라고 지칭되는 것은 많다. 최근에 ‘원조’라는 단어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새로운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너무 원조라는 단어를 남용하여 그 의미가 조금 변질되고 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원조는 영원히 원조일 뿐이고 그 나머지는 영원히 나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항상 원조를 뛰어넘는 것은 생기기 마련이며 시대는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조라는 틀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원조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개인의 근본을 찾기보다는 개인의 개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원조에 만족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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