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로테스 타트의 성서 해석
14장. 현대 프로테스타트의 성서 해석
1905년 슈바이처는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라는 책에서 19세기 주요 학자들이 “예수의 메이야 성”은 단순히 윤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사상에 있는 “종말적 요소”는 제자들의 오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20세기와 함께 종말사상에서 본 예수의 상(像)은 생기를 잃을 운명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더욱 생기 발랄하게 여겨졌습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도 이미 성서 연구 학자들은 성서 연구에서 보통 사용하고 있는 “역사적 방법”이라는 도구로는 성서를 설명 할 수 없음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도 슈바이처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성서연구에서 “역사적 예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생명의 인도자”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대전 이후에는 성서 연구가 진전되면서 성서는 단순하게 사실만을 기록할 목적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한 예로는 복음서는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며, 복음서는 신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신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세기의 비평학자들이 지금까지의 연구 토대로 “예수의 생애”를 규정하는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예수의 생애에 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러 사건들이 어떤 순서로 발행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며, 그리고 예수님의 심리적 발전을 설명 할 수 있는 그림이나 도식을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우리는 예수의 인간성의 발전을 추적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예수의 메시야적 성격에 직면하면서 그것을 대신 할 만한 아무 구조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터는 신약성서에서 있어서 지금까지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최근의 신약성서 연구 결과로 “신약성서의 계시성”을 재 강조하게 되었는데, ‘원기록(original record)을 떠나서 읽어보려고 시도하는 경향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적(異蹟)은 복음서에 너무나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적(異蹟)을 빼 버리면 그 복음서는 1세기의 상황에서 분리되기에 차차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또 하나 최근의 “성서비평학”은 19세기의 비평학보다 한층 더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19세기의 비평이 자명한 것이라고 여겨던 것들이 지금은 이해 불가능 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우리들이 “이 문장이 진정한 것이다, 또는 아니다”라는 결정적인 충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 않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19, 20세기 초기의 비평학자들은 그들의 연구의 객관성을 믿고 “성서 비평”을 여러 학문들 중의 하나로 보려 했지만, 그들의 객관성이 과장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지금의 신약성서 연구에는 두 주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종교사”의 방법입니다. 종교사는 지난 60년 동안에 ‘희랍-로마세계’의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많은 사실을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대 종교에 관해서는 더 알 수 없는 경우가 보통이며, 그리고 평행되는 여러 종교적 사건들도 주위 환경이 기독교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환경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입니다.
두 번째는 복음서를 그 “환경”에 관련지어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에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원시 교단이며 그들의 구전으로 된 “전승”입니다. 이것을 “양식비판적 방법” 또는 “양식사적 방법”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그 단체의 필요성에 응해서 전승 안에서 이루어진 양식의 발전을 밝혀 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식은 초대 기독교 설교자들의 설교 본문이었을 “어록”과 “교화에 필요한 예화나 단편”, 청중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좀 긴 이야기”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해석 방법, 즉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원시 기독교를 연구하는 것”과 “전승의 양식으로 하는 연구 방법”은 성서 이해를 하는데 공헌하였지만, 기독교 신앙이 발전하고 부흥하는 관점에서 신약성서를 연구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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