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에 내려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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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강진군에 내려오는 전설
※눈물흘린 바위와 도둑애기
△위치: 강진군 강진읍 영파리
강진읍과 도암 면계의 고개가 이다. 이 고개는 길기 댸문에 쉬어가야 갈 수 있는 고개라 하나 읍기전설에 따라 휴유치로 쓰는 것이다. 이 고개에 있는 마을이 영파리고 만덕산의 뒷마을이다. 이곳에 김억추 장군을 모신 금강사와 김천일 장군의 부조묘가 있다.
이곳 영파리쪽 만덕산 중턱에 금수굴, 베틀굴, 도리깨굴, 소구굴, 열두굴 등 여러 굴이 있다. 금수굴은 깊어서 아직 그 정확한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베틀굴은 임란떄 이 마을 여인이 피난을 가서 베를 짜고 있었는데 굴 입구를 지키던 개가 왜병을 보고 짖자 올려다보고 대포를 쏘아 대포구멍이 뚫렸다고 하여 큰 구멍이 나 있다. 이 마을은 4개 마을로 나뉘어 있는데 팔영리에 ‘눈물흘린 장군바위’가 있다.
3백여년전 늙도록 아들이 없던 이 마을 노파가, 장군이 하늘에서 마차를 타고 동네 뒤 바위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을 꾼 뒤 노파는 이상한 꿈도 있다 싶어 그 바위에 가보았다. 바위에는 말발굽과 마차바퀴 흔적이 있었다. 이후로 10개월만에 이 노파는 옥동자를 낳았다.
어느날 이곳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이 노파에게 아들이 귀하게 될 터이므로 잘 기르라고 이르고 떠났다. 아이는 낳은지 이틀만에 일어나 걸어다니며 병정놀이를 했다. 집안에 아이를 두고 들에 나간틈에 이웃 아낙네가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므로 문틈으로 엿보았더니 갓난아이가 날아다니므로 그 아낙은 놀라 자신도 모르게 “도둑이야”하고 외쳤다.
이 일이 있은 뒤 이 아이는 도둑질만 일삼았고 마침내 고을에서 원님이 이 일을 알고 잡아 죽였다. 그 뒤; 하루는 태어날 때 찾아왔던 스님이 다시 찾아와 이 아이의 성장과 종적을 묻더니, “방정맞게 여자가 아이의 이름을 도둑이라고 불렀기 떄문에 도둑질을 하다가 죽은 것”이라며 애석해 하고 떠났다.
이 후부터 장군말발굽이 박힌 바위는 항시 눈물을 흘리듯 물을 흘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 마을사람들은 70여년전 용이 승천한 일이 있어 용바위라고도 한다. 이와같은 전설을 담은 이 바위는 마을에서 2백 50여m가량의 거리에 있다. 『한국의 전설』 「전설의 현장」
※어필각의 전각판
△위치: 강진군 강진읍 교촌리
어필각은 강진읍 교촌리현 향교 곁에 있는 고각이다. 이 어팔각에 중국의 주자가 썼다는 20개의 전각판과 우왕의 수전 8판과 영조대왕의 글씨 1판이 보존되어 있다.
이 전각중 란 7자가 4판에 새겨져 있는데 어떤 이는 영조의 글씨라 하나, 일제때 만든 ‘강진군지’에는 명나라 의종의 글씨라고 적혀 있다. 이 글씨는 민정중이 연행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이 어필각은 남강원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는 주자와 송시열을 모신 남강원과 어필각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어필각의 근본이 된 남강원은 1803년 송시열의 후학들이 송시열이 죽기 전 제주로 귀양갈 때 풍랑으로 떠나지 못하자 만덕산 백련살에 머물러 있으면서 며칠간 강의한 것을 기념해 영정을 백련사에 모신 영당이 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