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만들었던 가사 동학가사東學歌辭
동학교단에서 동학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만들었던 가사로 천도교가사(天道敎歌辭)라고도 한다. 전통적인 한글 가사체(歌辭體) 형식을 빌려 일반 민중과 부녀자가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큰 호응을 받았다. 동학교도가 암송하거나 노래로 불러서 전해지기도 했고, 또는 구전되면서 경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목판본으로 간행하기도 했다. 첫 작품은 최제우(崔濟愚)가 1860~1863년에 지은 《용담유사(龍潭遺詞)》에 수록된 것들로 모두 한글로 지어졌다. 즉 1860년에 지은 , , , 1861년에 지은 , , , 1862년에 지은 , 1863년에 지은 등 9편이다. 에 실린 가사는 순한문으로 된 천도교 경전인 과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더욱 절실하다. 서양 세력의 동점(東漸)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이에 맞서기 위한 정신자세로서 동학을 내세운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외에도 동학교단에서는 많은 가사가 만들어졌다. 그 중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것은 용호대사(龍虎大師)라는 미지의 인물의 , 이서구(李書九)의 6편 등으로 홍우(洪又)가 편찬한 에 실려 있다. 목판본으로 전해지는 것은 경북 상주지방에서 동학교라는 교단을 따로 연 김주희(金周熙)가 간행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방대한 자료는 김주희가 간행한 것으로 수집한 자료에 자신의 창작을 추가하여 1922~1933년에 펴낸 것이다. 총 40책에 이르며, 이 빠진 8편과 더불어 100여 편에 이른다. 최제우의 도통을 이어받아 동학교를 창건했다고 했는데도 그 내용은 와 다르다. 즉 동학을 서학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행사상에서의 동방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으며, 표현에 있어서도 너무 관념적이고 작자의 심정을 드러내기보다는 교리를 풀이하는 데 치중하였다. 동학가사는 가사문학사에서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기 동학사상 연구에 가장 소중한 자료이다.
의 내용과 창작 과정
1. 제명에 관하여
는 동학의 교조인 수운 최제우 선생이 쓴 동학의 중요 경전(經典)이며, 동시에 가사(歌辭)로 분류되는 문학 작품이다. 즉, 수운 선생이 ‘가사’라는 조선조의 전통적인 문학 양식 안에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것이라고 하겠다.
본래 이 ‘용담유사’를 초기에는 ‘유사팔편(遺詞八篇)’ 또는 ‘가사팔편(歌詞八篇)’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을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신사년(申巳年,1881)에 충청북도 단양군 남면 샘골에 있는 여규덕(呂圭德)이라는 도인의 집에 간행소를 차려놓고 일 책 일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하여, 오늘과 같은 이름인 ‘용담유사(龍潭遺詞)’라는 제명을 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용담(龍潭)’이라는 말은 곧 수운 선생을 지칭하는 말이며, ‘유사(遺詞)’는 말 그대로 선생님께서 남기신 노래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볼 때에 ‘용담유사’라는 제명은 곧 ‘용담 선생께서 남기신 노래’라는 의미가 된다고 하겠다.
2. 에 담긴 편명과 편수
현재 전하고 있는 에는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 , , , , , , 등이 이들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의하여 몇 편의 노래가 더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즉, , 등의 노래가 더 있었다는 동학의 기록을 들어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와 관련된 동학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수련을 하니 자연 아님이 없다. 이에 를 짓고 또 를 짓고 , 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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