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세계 사법가 vs 유가
옛날 중국의 주인이 되었던 진나라는 엄정한 법을 중시하는 법가 사상을, 한나라는 군주의 덕을 강조하는 유가사상을 중시했다. 진나라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조일뿐더러 이 나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차이나(China)’는 서양 세계에서 중국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반면 한나라는 4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통치했고, 오늘날에 중국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한족 역시 이 한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진과 한, 모두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중국사의 큰 맥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 진에서 한으로의 왕조 교체가 말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진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엄격한 법으로 사회를 다스리면서 강인한 군대를 키웠다. 이것이 전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중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케 한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대단했던 진나라는 웬일인지 20년도 채 안 되어 무너지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재상 상앙은 재임한지 10년 만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몰아붙여 거열형에 처해졌다. 진나라의 말로는 바로 덕치가 법치보다 대중에게 더 알맞은 정치방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엄격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린 진나라는 법이 악용되기에 너무 많은 허점이 있었다. 진시황은 법을 내세워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과 노역을 강요하고, 만리장성과 자신의 무덤을 건설하는 등 어마어마한 토목 사업에 국력을 낭비했다. 결국 법대로 따르기를 거부한 백성들의 반란이 줄을 이으면서 진나라는 짧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나라의 법치에는 군주는 법을 초월한 절대 권력자로서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 정치였다. 진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상앙은
“국가는 오직 권력으로만 유지될 수 있고, 그 권력은 대규모 군대와 충분한 식량에서 나온다.”
라고 믿었다. 즉 덕이 없었고, 진나라는 백성들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반면 한나라의 덕치는 임금이 덕을 잃고 폭정을 일삼으면 백성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임금을 갈아 치울 수 있었다. 유가 사상의 정통 계승자인 맹자는
“왕보다 나라가 중요하고, 나라보다 백성이 더 중요하며, 왕도를 행하지 않는 군주는 군주일 수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법이 전부는 아니었다. 법만으로는 인간 사회의 모든 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 정치를 봤을 때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진나라는 그 엄격한 법으로 나라를 세웠고, 또 그 법으로 나라가 멸망했다. 그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 법치를 했기 때문에 멸망했다. 즉 나라가 무엇에 의해 성립되는지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책과 친구들과 함께한 토론을 통해 옛 중국의 나라들이 밟아온 흔적들을 통해 현재 우리가 세워야 할 정치 이념은 과연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