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大國대한민국 내면보다 보이는 게 중요하다
내면보다 보이는 게 중요하다?
우리사회의 ‘외모중시 풍조’ 영향
최근에 행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성형수술을 한 경험이 있고, 35%는 성형수술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성형수술이 붐을 넘어 일상생활처럼 되면서 젊은 여성은 물론 중년층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서울 강남 압구정동과 청담동, 이화여대 입구엔 빌딩마다 성형외과 간판이 붙어있을 정도다.
성형수술의 붐은 우리사회 전반의 ‘외모중시 풍조’가 빛은 결과라고 한다. “못생기면 손해”라거나 “예쁘면 어디서건 대접 받는다”고 믿는 탓에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 부담과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성형외과를 찾는다는 것이다. 또한 텔레비전 속에는 예쁜 사람들만 나온다. 가끔 등장하는 못생긴 여자들은 웃음거리이거나 푼수처럼 묘사된다. 예쁜 여자들은 주위사람들이 이유 없이 도와주고 왕자 같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처럼 대중매체에서 마저도 외모지상주의 확산의 주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를 탓할 수는 없다. 얼굴이나 신체 일부분 때문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던 사람이 수술 뒤에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 사례가 많다는데서 드러나듯이 성형수술이 자신감 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초등학생까지 “외모가 제일”이라고 여기고 젊은 여성 상당수가 “성형수술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못한다.” 고 생각하는 바람에 새로운 빈부 갈등까지 유발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문제이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Necke, Hermann)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자기의 육체를 이성의 육체를 보듯 하고, 또는 스스로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한 여성이 거울 앞에 오랫동안 서서 자신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황홀하여 바라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나르시시즘이다.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은 현재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고 있다. 거울이 아닌 타인들의 눈에 외적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려고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병에 걸려 버린 것이다.
C.S 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 까지」의 서문에는 “사랑은 수 백 수 천 가지의 얼굴을 지니고 있어 감히 ‘이것이다’라고 말 할 수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이 문구를 “사람에게는 수 백 수 천 가지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감히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해석을 해본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라는 휴행가의 노랫말을 좋아한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면접에서 외모를 본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TV 속의 연예인의 외모에 열광을 넘어 환장하는 지경 까지 왔다. 이제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귀에 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며 귀를 막아도 들리는 영혼의 선물이다. 나아가 아름다움의 극치는 생명이 그 거룩한 모습을 그대로 보일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그대로 내 보임으로써 아름다움의 극치를 실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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